큰 아이가 태어났던 2005년. 출생 몇 달 전부터 가족들의 관심사는 아이의 이름이었다. 예비 할아버지는 물론 생각지도 못했던 친척 어르신들까지 이름은 어떻게 지을 것인지 물어 왔다. 내심 아이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겠다는 제안도 여럿 받았다. 부모로서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지, 아이에게 어떤 태교를 해줬는지 등 세세한 부분을 묻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 아이에게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부모와 뱃속 아기와 소통하려 애썼다. 매우 고마웠고, 그런 주변 사람들의 정성 덕에 지금껏 건강히 잘 자라고 있다. 그 이후로 ‘이름 짓는 일이 참 많은 사람과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청와대 관저에서 키우는 진돗개 ‘희망이’와 ‘새롬이’가 새끼 5마리를 낳았다며 이름을 지어달라는 글을 올렸다. 박 대통령은 “여러분이 우리의 진돗개 새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시면 더욱 의미 있고,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이라면서 “새끼들이 좋은 이름을 받아서 잘 자라길 바라며, 여러분께서 댓글을 통해 많이 참여해 주시길 기대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진돗개 새끼들의 이름 짓기를 통해 국민들과 소통을 하고자 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답하고 있다. 초롱, 다롱, 방울, 흰동, 몽실 등 아기자기한 이름도 있다. 대통령의 소소한 일상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TV 화면에서 보는 대통령은 주로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이라 국정 책임자의 ‘힘을 뺀’ 모습은 국민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소통은 그리 쉽게 이뤄지지 않나 보다. 진돗개 이름 공모에 대해 아몰랑 다몰랑 영몰랑 싹몰랑 걍몰랑 등 비판과 조소를 담은 표현도 상당히 많고, 호응도 상당하다. 심지어 국정 책임자가 이 엄중한 시기에 진돗개 이름을 의뢰하는 것은 너무 한가한 판단 아니냐는 등 날 선 비판도 잇따랐다.
SNS에 가끔 글, 사진을 올리는 일방통행식 시도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소통은 꾸준하면서도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야 가능하다. 취임 이후 줄곧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박 대통령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큰 일이 생겨도 장관이나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보고 받지 않거나 필요한 시기를 한참 지나서야 받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때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대면 보고를 한 차례도 받지 않았고, 최근 목함 지뢰 폭발 사건 때도 한민구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회창 전 총리는 2일 서울대 강연에서 박 대통령을 향해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정의라고 독단하는 것은 아닌지, 옛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수직적 통치 형태로 회귀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소통의 부재는 독단, 독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소통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것은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이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지자들은 한 번이라도 더 박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말과 글을 접하면서 좋은 기분을 갖고 싶을 것이다. 반면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면 국정 운영 방향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이는 자신의 앞날을 계획 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누군가 다른 사람 아기의 이름을 잘 짓기 위해서는 평소 아기 부모와 소통하며 집안의 분위기나 부모의 성향을 알기 위해 애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저 사전에서 좋은 뜻의 말만 골라 조합하는 데 그치고 만다. 희망이와 새롬이의 새끼 진돗개들의 이름을 잘 지으려 하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대통령 한 사람 밖에 없다.
박상준 정치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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