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볼 시간은 줘야 하네" "눈 때문에 연방정부 문 닫다니"
측근에 먼저 새해인사 건네고 IT기기 미숙한 60대 모습 보여
오바마·베이너 하원의장 뒷담화 등 형사범죄 수사 대상될 내용은 없어
‘TV 드라마를 볼 시간 정도는 줘야 하네’(2009년 12월말ㆍ비서에게 보낸 이메일), ‘눈 때문에 또 연방 정부가 문을 닫다니. 바보 같은 짓이야’(2010년 2월ㆍ셰릴 밀즈 비서실장에게 보낸 이메일).
내년 미 대선 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임시절 개인 서버로 주고 받은 이메일 공개가 클린턴 전장관의 치부를 드러내 줄 것으로 기대했던 미국 공화당의 희망이 물거품이 될 조짐이다. 국무부가 논란 끝에 지난달 31일 공개한 4,368건, 7,121쪽 분량 이메일 분석 결과 외국 정상이나 정적에 대한 신랄한 평가 등 논란거리도 적지 않았으나, 전반적으로 업무에 대한 열정과 솔직ㆍ소박한 클린턴 전 장관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국무부 실무진이 일부 민감한 내용을 삭제한 뒤 공개한 이메일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격식을 따지지 않고 일에 전념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물론 정보통신(IT)기기 조작에 미숙한 60대 여성의 모습을 드러난다. 폭설을 이유로 연방정부 공무원이 사흘 연속 휴무하는 걸 개탄하던 클린턴 장관은 당일 사우디아라비아 출장 길에 나선다. 또 2010년 7월 이메일에서는 아이패드 충전법이나 뉴스 앱을 제대로 업데이트하지 못해 쩔쩔매기도 한다. 측근이 아이패드가 와이파이(Wi-Fi)에 연결돼 있냐고 묻자 “연결돼 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반문한 것. 또 국무부의 기밀 분류법 및 이메일 사용을 불편해하며 상당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대권 도전에 장애물로 인식되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딸 첼시가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복구 작업의 실태를 고발, 신속한 대응을 이끌어 낸 사실도 이메일로 확인됐다. 첼시는 당시 아이티 현지를 다녀온 뒤 엄마에게 “복구 작업의 무능함이 망연자실하게 만들 정도”라고 비판했고, 클린턴 전 장관은 이를 토대로 측근에게 아이티의 실상을 확인하도록 요청했다.
또 클린턴 전 장관은 부하와 측근들에게 새해 인사를 먼저 건네는 다정한 성품을 지니고 있으며, 때로는 TV 시트콤과 법률드라마를 즐기는 평범한 여성이라는 점도 알려준다. 그는 2010년 1월 비서진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TV 시트콤인 ‘파크 앤 레크리에이션’이나 ‘더 굿 와이프’를 즐길 시간은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밖에 공개된 이메일에는 클린턴 전 장관 측근들이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을 ‘알코올 중독에 게으르고 나약한 지도자’로 폄하하거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서도 상당기간 불만을 품어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총 3만건 중 일부가 공개됐지만, 미국 언론은 대체로 클린턴 전 장관에게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AP통신은 국무부가 1차 공개한 부분만 보면 클린턴 전 장관이나 최측근 인사가 이메일 사용과 관련해 형사범죄 수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이클 무카시 전 법무장관도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기밀 정보를 애인에게 누설하고 이를 은폐한 혐의로 낙마한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비교하면, 클린턴 전 장관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도 이날 폭로 전문기자 제임스 오키프가 명백한 증거 없이 ‘클린턴 진영이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하자, 보수 진영의 클린턴 흔들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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