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 오락가락 진술에 현실성도 떨어져
사진ㆍ항공촬영ㆍ공문 어디에도 창고는 없었다
검찰은 사실확인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재건축 조합장 유씨는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백의종 씨에게 건넸다는 현금 4,000만원의 출처 및 보관장소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특히 뇌물로 줄 돈을 보관했다는 창고에 대한 진술은 검찰과 법정에서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아현동 조합사무실 지하창고라고 말했다가, 변호인의 추궁이 이어지자 1층 창고에 보관했다고 둘러댔다. 1층에는 상가는 있지만 창고는 없다고 추궁 당하자 유씨는 ‘최종적으로’ 1층 상가 옆 주차장에 임시창고를 만들어 뇌물로 줄 현금을 보관했다고 주장했다. 주차장에 베니어판으로 칸막이를 설치해 임시로 창고를 만들고 그 안에 현금으로 수억 원을 보관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씨가 지목한 주차장은 사람들이 조합 사무실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인데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며 이목이 집중되는 공간이다. 그런 공개된 곳에 거액의 현금을 보관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대목이었다. 법원조차도 “자신의 계좌에서 돈 일부를 인출해 모아두거나 여기저기서 차용해 만들어 둔 현금을 이 사건 재개발조합의 사무실 창고 박스에 담아 보관했다는 점이 이례적”이라고 언급했다. 오락가락하는 그의 진술을 들여다 봤다.
유씨는 2010년 11월15일 백의종 씨 뇌물 사건에 대해 서울서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검사 : (백씨에게 현금으로 줬다는) 4,000만원의 출처는 어떠한가요?
유씨 : 개인 계좌에서 일부 뽑아서 모아 두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차용한 현금을 만들어서 조합사무실 ‘지하창고’에 박스에 담아서 보관했습니다.
유씨는 그러나 2011년 백씨의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선 뇌물 보관장소에 대한 말이 달라진다.
백씨 변호사 : 증인(유씨)은 현금 4,000만원을 박스에 담아 조합사무실 지하창고에 보관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지요?
유씨 : 예
재판장 : 조합 사무실에 창고가 어디에 있었나요?
유씨 : 2층이 사무실이고 1층에 창고가 있었습니다.
변호사 : 1층은 타인에 의해 소매시설로 사용되고 있었던 거 아닌가요?
유씨 : 조합에서 1층을 일부 창고로, 일부 사무실로 사용했습니다.
변호사 :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1층은 소매점과 주차장 등으로 구성된 거 아닌가요?
유씨 : 주차장을 창고로 사용했습니다.
변호사 : 주차장에 별도 시설을 만들어 창고로 사용한 건가요?
유씨 : 주차장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빈 공간으로 있던 것을 베니어판으로 칸막이를 해서 사용했습니다.
변호사 : 1층 창고에 거액을 박스로 담아 보관했다는 건가요?
유씨 : 예. 그때그때 필요한 돈을 보관했습니다.
유씨의 말이 바뀌는 게 이상했지만 뇌물 보관 창고가 실제 그 자리에 있었다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유씨가 언급한 아현동 조합사무실 주차장을 찾아가 봤다. 현장에 가보니 마포경찰서 뒤편에 자리 잡았던 조합사무실은 2007년 재건축 때문에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아파트 숲이 들어서 있었다. 조합사무실 1층 주차장에 베니어판으로 만든 임시창고가 있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유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실제 창고가 있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백의종 씨가 수사를 받았던 2010년에는 조합사무실 건물이 이미 철거됐기에, 뇌물 창고의 존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유씨가 얼렁뚱땅 지어낸 말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도 재판과정에서 창고 존재에 대한 증거물을 내놓지는 못했다.
직접 확인을 하기 위해 조합사무실이 철거되기 직전 사무실 건물을 찍은 2006년 사진을 수소문 끝에 구했다. 이 사진을 살펴보니 사무실 1층 바로 옆에는 차량 2대가 일렬로 겨우 들어설 수 있는 좁은 주차공간이 있었다. 주차장에는 베니어판으로 칸막이를 설치한 흔적이 없었고 아예 창고 자체가 없었다. 주차장 용도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유씨 주장과 달리 차량도 주차돼 있었다.
재개발이 이뤄진 아현3구역 주민으로 세입자 보상문제로 조합사무실을 자주 방문했다는 50대 남성에게 창고의 존재를 물었다. 그는 “1층에는 자동차를 2대 정도 댈 수 있는 주차공간과 다른 사람이 임대해 사용하는 설비가게가 있었지만, 베니어판으로 칸막이를 설치해 만든 창고시설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를 통해 유씨가 뇌물을 줬다는 2005년에 조합사무실 건물을 하늘에서 촬영한 항공사진도 입수해 분석했다. 확대한 사진을 보면 건물 옆에 자리잡은 주차장은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폭이 좁았으며, 차량 2대가 일렬로 주차돼 주차공간을 모두 차지했다. 주차장에 임시로 설치했다는 베니어판 창고는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서울 마포구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조합사무실이 있던 지번에 2005~2006년 허가된 건축물 이외에 합판 등으로 지어진 가건물이 있었거나, 불법시설물을 적발한 적이 있었는지 물었다. 마포구청은 “허가된 건축물 이외에 허가사항이 없으며, 무허가건축물로 적발된 사실도 없다”고 답변했다.
뇌물 보관 창고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검찰은 유씨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도 궁금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뇌물수수 시의원, 그는 사법 피해자인가’ 시리즈 다섯 번째(마지막) 이야기는 ‘오락가락 진술과 메모에 얽힌 사연’이란 주제로 뇌물범죄 수사하는 방법을 전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