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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철학이여, 침을 뱉어라!

입력
2015.09.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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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의 소설가가 공동체를 찾았다. 제도권 밖 창작학교 하나 만들어 보자는 것에 의기투합해서였다. 창작학교를 본격화하기 전, 각각의 소설가가 글쓰기 교실부터 하나씩 열기로 했다. 읽고 듣고 말하고 쓰기의 기초부터 공부하는 반에서 2라운드 인생을 위한 글쓰기 반, 소설을 공부하고 읽고 쓰는 반, 오직 소설을 쓰는 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쓰기 반을 시작했다.

작은 인문학 공동체에, 대학 문창과를 개설해도 될 만한 작가들이 모여 여러 글쓰기 교실을 연 이유는 하나다. 글쓰기가 필요한 사람, 글을 쓰려는 사람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이 사라진 대신,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 밖에 남지 않아도 글쓰기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학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모든 공부가 영어로 수렴되는 시대, 그래도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증거는 많다. 청년들의 취업에 필요한 자기소개서 쓰기부터 그렇다. 글쓰기와는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기업이, 금융기관이 탈(脫)스펙, 인성 등을 내세우면서 자기소개서 쓰기가 신춘문예를 방불케 한다고 하지 않는가. 블로그 하나를 운영하려 해도, 요즘 대세가 된 SNS에서 행세를 하려 해도 글쓰기가 필요해진 시대다. 이렇게 글쓰기가 힘이 있는 때, 최고의 전문가를 5인이나 모시고도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면 이는 전적으로 내 무능함 탓이다.

4인의 철학자가 또 한 권씩 작은 책을 출간했다. 한 달 전 공동체에서 가르치는 4인의 철학자가 작은 책을 낸 것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주제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다. 철학적인 성찰 한 번 하지 못한 채 잊혀져 가고 있는 비극을 우리가 공부해 온 들뢰즈의 개념으로, 푸코의 분석틀로, 베르그송, 후설, 하이데거, 레비나스의 사유나 예수와 붓다의 가르침으로 찬찬히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아무리 큰 비극이 일어나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건 우리 사회의 고질에 가깝다. 심성이 냄비인 탓은 아니다. 원인을 규명하고 제도적, 법적 대안을 마련할 의지와 자신감이 없는 탓이다. 망각으로 이득을 얻는 자본, 기억을 두려워하는 권력이 있는 탓이다. 이들이 망각을 부추기는 탓이다.

철학, 인문학은 공리공론이 아니다. 상품의 외형이나 그럴듯하게 꾸미는, 이른바 창조경제의 동력은 더욱 아니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하이테크 시대, 로테크 미디어인 작은 책을 만든 것도 이런 인문학의 본령을 생각하며 인문학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의 가장 큰 동력은 루터를 비롯한 개혁가들의 작은 책이었고,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도 토마스 페인의 ‘상식’을 비롯한 팸플릿이었다. 근대 국가의 사상적 기반은 철학에서 나왔다.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민주주의도 인문학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공사 계획이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여기에 설악산의 생명 생태에 대한 고려나 인간 중심의 윤리에 대한 비판, 미래 세대의 권리 등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있었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갈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대통령의 지시와 이를 이행한 관료들의 무소신 뿐이다. 설악산 케이블카는 설악산에 그치지 않는다. 지리산, 북한산, 대둔산, 신불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들의 케이블카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최고의 생태 보고이자 최고의 비경을 간직한 설악산 정수리에 케이블카가 지나는데 다른 산이 무사할 수 있을까. 설악산 케이블카 계획의 승인으로 머잖아 우리는 명산들을 가로지르는 흉물을 보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산들이 이미 곤돌라로 연결된 덕유산 향적봉처럼 유린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설악산, 지리산의 생태와 생명을 간직한 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도대체, 이런 일에 무력하기만 한 철학을, 문학을 우리가 공부할 필요가 있긴 한 것일까.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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