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동물이 식용으로 팔리다니 믿기 힘든 소식이다. 최근 서울동물원에 있던 사슴과 새끼흑염소 등 43마리가 개체 수 조절을 위해 매각됐는데, 이들이 동물을 식용으로 도축하는 곳으로 팔려가는 일이 있었다. 인간을 위해 존재했던 동물에 대한 이런 처분 방식은 국내 동물원의 윤리의식뿐만 아니라 잉여개체 관리, 가축 전시 등 동물원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함께 드러냈다.
다시 동물원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이럴 때는 처음으로 가보아야 한다. ‘동물원의 탄생’을 펼쳤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인간이 개입한 비자연사를 인류학적 시각으로 풀었다.
동물원의 시작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루에 몇 천 마리의 동물이 살육됐던 로마 콜로세움에는 지하에 동물 우리가 있었고, 알렉산더 대왕, 네로 황제 등을 비롯한 고대 문명의 황제, 총독, 정치인 등 힘 좀 꽤나 쓴다는 사람들은 진기한 동물을 모았다.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는 무려 1,100마리의 동물을 모았다니 웬만한 동물원 수준이다. 이처럼 사적인 동물 수집을 통해서 부와 권력을 과시하던 곳을 동물원과 구분해서 미네저리(menagerie)라고 부른다.
이런 문화 속에서 인기를 얻은 희귀 동물도 있어서 1700년대 유럽에서 인기를 얻은 코뿔소 클라라는 무려 18년 동안 모든 계층의 인기를 얻었다. 코뿔소를 흉내 낸 헤어스타일까지 유행했다고 하니 가히 인기를 짐작할만하다.
비로소 동물원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1793년 파리 동물원을 시작으로 런던동물원, 미국 센트럴파크 등 연달아 문을 연다. 이 시기 동물원은 개인의 부와 지위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 승리, 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의 승리를 상징했다. 탐험가들은 식민지에서 호랑이나 코끼리를 사냥해서 고국에 보냄으로써 애국심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식민지의 동물과 함께 사람까지 고국으로 보내게 되었고 동물원은 동물은 물론 사람을 전시하는 ‘사람 쇼’도 열리는 곳이 되었다.
동물원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독일의 하겐베크 가문이다. 생선장수로 시작한 이 가문은 그물에 걸린 물개 여섯 마리로 쇼를 해서 돈을 번 이후 동물 거래, 서커스, 동물원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그러다가 동물 사업이 잠시 침체에 빠지자 새로운 수입원으로 찾은 것이 바로 사람 쇼였다. 스리랑카 사람들을 전시한 쇼는 1886년 파리에서 일요일마다 평균 5만~6만 명의 인파를 불러 모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한국으로의 사람 수집 여행이 기획되기도 했었다니 이 기획이 실행되었다면 한국인도 유럽인들 앞에 전시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후 동물원, 서커스, 사냥공원 등이 늘면서 동물 포획량이 급증했고 포획방법도 점점 폭력적으로 변했다. 다음은 당시 코끼리 포획과정을 묘사한 글이다. 동물원 동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 앞에 오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어미 코끼리를 죽이고 새끼를 나무에 묶었는데 흙을 후벼 파면서 울부짖고 신음했다. 새끼 중 하나가 자기 코를 앞다리 사이로 밀어 넣어 뒷다리에 묶고 힘들게 숨을 쉬더니 질식해 죽었다.’
100년 전 사람 쇼를 기획한 동물원은 사람 쇼가 ‘색다른 것’인 미개인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류학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 동물원도 동물원의 존재 이유를 오락보다 교육에 방점을 찍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 시절 승승장구하던 사람 쇼는 1931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사람 쇼가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정치, 사회적인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전시된 사람들이 동물과 달리 자신의 의지를 전달할 ‘언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당신들의 보호 아래 있어서 안전하고 너무 행복해요.“라며 얌전히 있어야 할 미개인들이 “야, 나도 네가 입은 옷 입고 싶어.”라며 거래를 요구했으니 더 이상의 억압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동물들은 여전히 동물원에 갇혀 있다. 동물원은 생존 투쟁에서 해방된 동물 천국도 노아의 방주도 아니다. 현대 동물원의 전시 방식이 동물 위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 또한 사람들이 창살 뒤 좁은 우리에 갇힌 비참한 동물을 보는 것보다 자연 상태에서 사는 듯한 동물을 보는 것을 덜 불편해 하기 때문이다. 동물원은 탄생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동물을 위한 공간인 적이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비로소 앞으로의 동물원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김보경 책공장 대표
참고한 책: 동물원의 탄생· 니겔 로스펠트· 지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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