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82㎝이상 의사 등 고학력 직업, 까다로운 조건에 지원자 90% 탈락
동성결혼 합법화·독신 여성 증가로 인공수정 수요 빠르게 늘어
수백명 이복형제·유전병 우려
동성 결혼 합법화와 독신 여성 증가 등으로 최근 영국에서 인공수정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정자 기증자가 크게 부족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정자 기증자에 대한 신체적 지능적 조건이 까다로워 정자 부족 현상은 쉽게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조건을 통과한 소수 기증자의 정자가 너무 많이 수정돼 수백명의 이복형제가 태어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일 로라 위젠스 영국 국립정자은행장이 “정자은행이 설립된 지 1년을 맞았지만 등록된 남성 정자 기증자는 단 9명에 불과하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며 정자 부족문제를 집중 분석했다. 고민 끝에 국립정자은행은 이달 말부터는 ‘남성의 가치는 우수한 정자로 입증된다’는 식의 정자 기증 참여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영국 인간수정배아관리국(HFEA)에 따르면 영국의회가 2013년 7월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이후 동성커플의 정자 수요는 2013년 이후 약 20%나 증가했다. 영국 정부는 이들을 돕기 위해 지난해 10월 런던의 버밍엄에 있는 여성 병원에 국립정자은행을 설립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정자 기증자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정자 기증자의 조건으로 키 182㎝ 이상, 의사 등의 고학력 직업이 요구되면서 지원자의 약 90%가 탈락하고 있고, 또 한번 정자를 기증할 때 약 35파운드(약 6만원) 밖에 받지 못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약 4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와야 하고 성생활과 자위행위도 금지되는 조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성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정자 값’을 올려줄 수도 없는 실정이다. 위젠스 정자은행장은 “우리가 비싼 대가를 지불하면 자신의 건강을 속이고 정자를 기증하려는 남성들이 분명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립정자은행이 이번에 홍보 캠페인을 벌이면서 남성의 신체적 허영심을 겨냥하는 것도 정자 기증을 이끌만한 별다른 유인책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은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는 18세가 됐을 때 아버지의 신원을 알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는데, 자신이 태어난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건 윤리적으로도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영국은 정자 수요를 자국 내에서 충당할 수 없으면서 비상이 걸렸다. 국립정자은행에서 정자를 얻지 못한 동성커플이나 노부부 등이 덴마크나 미국, 캐나다 등에서 정자를 수입하는 방법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정자 기증을 한 남성의 질병 기록을 확인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 남성의 정자가 남용돼 무수한 이복형제가 태어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이복남매끼리 서로를 알아 볼 수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기형아 등의 출생 비율을 높이는 근친상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올 4월 덴마크에서는 유전병인 신경섬유종증을 앓던 남성의 정자 기증으로 100여명의 아이들이 태어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중 10명은 해당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캐나다에서는 한 남성의 정자로 지난 30년 동안 최소 500명 이상의 아이들이 태어났다는 학계 보고도 있었다. 영국은 법을 통해 한 명의 정자로 수정시킬 수 있는 아이의 수를 약 1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위젠스 정자은행장은 “우리는 사람들을 수백 명의 이복형제를 낳게 하는 덴마크의 정자은행으로 보내지 않을 것”이라면서 “3년이나 5년 안에 충분한 수의 정자 기증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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