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꽃이 배롱나무 꽃이다. 백일 동안 붉게 핀다고 해서 백일홍(百日紅)이라지만 한번 핀 꽃송이가 백일을 간다기보다 같은 줄기의 꽃들이 연이어 피고 지는 것이다. 줄기에 손을 대면 간지럼타듯 잎이 흔들려 간지럼나무로도 불리고, 배고팠던 시절 꽃이 질 때쯤 벼가 익는다 해서 쌀밥나무라는 이름도 가졌다. 껍질 없는 매끈한 줄기의 배롱나무는 여성의 몸을 연상케 한다 해서 대가 집에선 금기시됐고 깨끗하고 청렴 하라는 의미로 주로 수행자를 위한 사찰과 서원에 심어졌다. 배롱나무 꽃으로 유명한 곳이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이다. 임진왜란의 참상을 기록한 ‘징비록’의 저자 서애(西厓) 류성룡의 학문을 기리기 위한 이 서원에 390년 배롱나무가 꽃을 활짝 피워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무기를 잡으러 떠난 정인(情人)을 기다리다 목숨이 끊긴 처녀의 무덤에 백일 동안 피어났다는 백일홍의 전설이 오늘따라 더욱 붉게 피어나는 것 같다.
멀티미디어부 차장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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