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현역의원·농어촌 의식
"지역구 증가 불가피… 비례 축소"
새정치, 겉으론 "비례 축소 안돼"
민감한 의원 정수 언급은 아예 안해
김무성 끝내 "정치적 협상 고민"
'정치 개혁' 대전제 사라질 위기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결국 ‘선거구 획정 기준 방정식’을 해결하지 못한 채 1차 시한을 넘기고 말았다. 여야는 ‘연장전’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런다 해도 ‘정치개혁’이라는 간판에 걸맞은 정답이 아닌 ‘꼼수합의’수준의 답을 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밥그릇’ 놓지 못해 ‘고차 방정식’으로 키운 여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31일 선거구 획정 기준 마련과 관련해 ‘정치 협상’방식을 거론하면서 이런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김 대표는 이날 “선거를 앞두고 법 개정이 있어야 할 부분에 대해 정개특위를 다시 구성해 해결할 것인지 해당 상임위에 맡기고 정치적 협상으로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는 상임위에 맡기되 내용은 여야 당 대표 회동을 통한 협상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선거구 획정의 기준을 논의해 온 정개특위는 이날로 시한을 마쳤지만 여야가 재구성만 결정하면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
5개월간 달려온 정개특위가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지역구 기득권’을 버리지 못해서다. 선거구 획정 문제는 여야 합쳐 246명에 달하는 현역 의원들의 정치 생명이 달린 문제인 데다 지역구 전환 출마를 준비중인 비례대표 의원들까지 합치면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정치학자들은 정당의 대표성 확대, 군소정당의 원내진출, 표의 등가성 증대 등을 위해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통한 비례대표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정치권에서는 지역구 기득권에 가로막혀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대해 여야는 민심을 핑계삼고 있다. 정치불신 탓으로 유권자들이 의원정수 유지에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선거구 인구편차를 조정하면 현재 246명인 지역구 의원 수 증가가 불가피하니 지역구가 느는 만큼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이자는 입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겉으로는 ‘비례대표 축소 반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의원정수 증가 언급은 자제하는 모습이다.
여야 텃밭 ‘농어촌지역구’ 변수까지 겹쳐
여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농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이 가세하며 방정식은 더욱 꼬였다. 새누리당 황영철(강원 홍천ㆍ횡성) 한기호(강원 철원ㆍ화천ㆍ인제ㆍ양구), 새정치연합 강동원(전북 남원ㆍ순창) 유성엽(전북 정읍) 의원 등 15명이 참여하고 있는 ‘농어촌 지방 주권 지키기 의원모임’이 사실상 총대를 맸다.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인구편차 2대1 이하’ 기준에 따르면 대부분 통ㆍ폐합 대상인 이들 지역구 출신 의원들은 농어촌 지역을 일종의 특별선거구로 정해 선거구 획정에서 한시적으로 제외시켜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구 하한(약 13만9,000명)에 미달되면서 1개 선거구가 3개 이상의 기초자치단체를 포함하는 경우’나 ‘인구 하한에 미달되면서 1개 선거구의 면적이 전국 1개 선거구 평균 3배 이상인 경우’를 농어촌특구로 정하자는 주장이다. 이런 조건의 지역구는 10곳으로 추정된다.
최근 들어 김무성 대표가 “비례대표 수를 축소하고 지역구 수를 늘리는 게 순리”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농어촌 의원들의 주장을 감안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개특위 소속의 새누리당 의원은 “선거구 획정으로 없어질 위기에 있는 농어촌은 호남을 제외하면 강원, 충청, 경북 등으로 모두 새누리당 지지세가 높은 곳”이라며 “김 대표로선 이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새정치연합에선 같은 이유로 호남 지역 의원들이 ‘지역구 확대-비례 축소’에 공감하고 있다.
전문가들 “꼼수 합의로 끝낼 텐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야가 시간만 끌면서 ‘의원정수 현행 유지, 지역구 확대-비례 축소’ 선에서 합의를 이룰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정치개혁이라는 목표를 무시하고 복잡한 고차 방정식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현행 선거제도의 불합리성을 솔직하게 국민에게 털어놓고 적극적으로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며 “민심을 핑계로 거대 두 당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 관계자도 “획정위의 관련 공청회에서도 전문가 8명 중 6명이 비례대표 확대를 주장했다”며 “정개특위가 학술단체나 시민단체, 학자들의 견해를 고려해 적극적이고 유연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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