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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 살리라" 김 대령은 트랙터 몰고 논으로 갔다

입력
2015.08.3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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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 전역 후 취업난 직면

정부 귀농 지원 늘리자 관심 부쩍

잦은 농촌·산간 복무로 적응 빨라

장기복무자 91% "귀농귀촌 희망"

"로망만으로 뛰어들었다간 낭패

최소 1년간은 예비 적응해 봐야"

“마을 어르신들께 ‘김 대령 오고 나서 마을이 시끄러워졌다’는 타박도 여러 번 들었죠.”

대령 계급을 끝으로 36년 군생활을 마치고 2005년부터 강원 원주시 판부면에서 10년째 귀농 생활을 하고 있는 김용길(65ㆍ육사 30기)씨는 2007년 마을 행사인 ‘꽃양귀비 축제’를 처음 기획해 한적한 시골 마을을 일약 농촌 관광의 명소로 바꿔놓은 성공한 귀농인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블루베리 농사로 매년 수천만원대 소득을 올리고 있고, 그에게 농사 기술을 배워가는 사람만 해도 한 해 수십 명에 달할 정도다. 김씨는 성공 비결에 대해 “군 출신은 다른 직종에 비해 낯선 농촌생활에 대한 적응이 빠른데다, 조직생활에 익숙해 농촌의 공동체 문화를 잘 흡수하는 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제2의 김씨를 꿈꾸며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직업군인들이 늘고 있다. 31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에 따르면, 육군본부가 지난해 제대 예정 군인(장기복무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587명 가운데 91%가 귀농귀촌을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이들 4명 중 1명은 이미 귀농귀촌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답변했다. 해마다 제대 직업군인이 2,000명 안팎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중 족히 100~200명 이상은 농촌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농정원 관계자는 “귀농귀촌에 대한 정부 지원이 본격화한 2010년 이후로 직업군인들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높은 관심은 교육 열기에서도 확인된다. 제대를 했거나 제대 예정 군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육군본부의 귀농귀촌 교육 참석자는 2010년 37명에서 지난해에는 두 배에 가까운 73명으로 늘어났다. 교육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농식품부는 이와 별도로 올해부터 제대 예정 군인 등 80명을 모아 1개월짜리 합숙 교육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제대를 앞둔 직업군인들이 이렇게 귀농귀촌에 큰 관심을 보이는 배경은 뭘까. 직업군인들은 피라미드 형 조직 구조의 특성상 40대 초중반 나이부터 제대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재취업 등 ‘인생 2모작’ 수요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일자리 부족으로 대기업 출신이나 전문직도 재취업이 힘든 마당에 군인이라고 재취업이 쉬울 리 없다. 그러다 보니 잦은 농촌ㆍ산간 지역 복무 경험으로 농촌이 친숙한 군인들이 자연스레 귀농귀촌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는 분석이다.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2009년부터 시행 중인 각종 지원이 이들에게 좀 더 폭넓게 적용되는 점도 한 원인이다. 정부는 귀농귀촌인에게 농어촌창업자금(최대 3억원)과 주택 구입ㆍ신축자금(5,000만원)을 저리에 융자하고 있는데, 민간인의 경우 ▦2010년 이후 농촌에 전입하고 ▦전입일 직전 1년 동안 도시지역에서 1년 이상 거주한 경우에만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제대 군인은 이런 엄격한 자격요건이 적용되지 않는다. 직업군인 출신 귀농귀촌인이 농기계를 구입하면 보조금을 주는 강원 양구군처럼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도 있다.

군인 연금 수령자는 비교적 적은 농업 소득만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점, 정착하고자 하는 농촌 인근에서 복무를 하면 마을의 텃세를 극복하기 쉬운 점 등도 군인들이 농촌으로 몰리는 이유로 분석된다. 농정원 관계자는 “젊은 나이에 퇴직을 하는 비율이 높은 군인은 타 직종에 비해 귀촌(전원생활)보다 귀농(농업 종사)을 더 많이 하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적한 농촌 생활에 대한 ‘로망’이나 정부 지원만 바라보고 무작정 귀농에 뛰어들었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시현 농촌경제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은 “직업군인 출신들은 타 직종에 비해 귀농 후 상당히 잘 정착하는 편이지만 최소 1년 정도는 예비적으로 귀농 생활을 해봐야 한다“며 “연금 같은 예비적인 소득이 없는 경우라면 최소 5, 6년에 걸쳐 농업 경험을 미리 쌓아놔야 실패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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