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
"삼고초려 끝에 결정한 작품"
한국 여성 오페라 연출가 1호로 통하는 이소영(54)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이 창극 ‘적벽가’로 돌아온다. 국립극장이 시즌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2012년부터 김성녀 예술감독의 요청을 “삼고초려한 끝에” 결정한 작품이다. 2011년 단장을 마친 뒤 연출했던 어린이 오페라 ‘지그프리트의 검’ 이후 4년 만의 복귀작이다. 31일 서울 중구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탈리아 유학 후 한국에 온 1993년 조연출로서 만든 작품이 국립극장의 창극 ‘구운몽’이었다. 소리에 대한 개념과 정신을 담고 있는 게 창(唱)이라서 창극은 언젠가는 연출하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97년 오페라 ‘결혼청구서’로 국내 데뷔한 그는 ‘라보엠’(1998) ‘가면무도회’(2001) ‘파우스트’(2005) 등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여성 연출가 1호로 자리 잡았다. 강렬한 상징성을 담은 절제되고 세련된 연출로 평단과 관객에게 두루 신뢰를 얻었고, 2008년부터 3년간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역임하며 “한국 오페라 레퍼토리에 새 지평을 열었다”(이용숙 음악 평론가). 그는 “(각자 역할이 있는 오페라와 달리) 창은 도창하는 사람이 홀로 이끄는 극한의 예술이고 창의 매력을 넓히기 위한 장르인 만큼 본연의 감동 즉 말과 소리가 갖고 있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연출자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15~1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적벽가’는 고전 소설 ‘삼국지연의’의 한 대목인 적벽대전을 소재로 한 작품. 호방하면서도 고음이 많고 풍부한 성량을 필요로 해 판소리 다섯 바탕 중 가창 난도가 가장 높은 작품으로 꼽히는 ‘적벽가’를 이소영 특유의 미니멀리즘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가창 외에도 이 작품의 백미인 백만 대군 결투 장면 등은 무대화하기 어려워 국립창극단 역사 53년 동안 적벽가를 무대에 올린 것이 1985년, 2003년, 2009년 단 세 차례뿐이다.
이 연출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인 송순섭 명창의 소리를 듣고 “창 자체만으로도 완벽하다”며 이 작품을 골랐다. 송 명창은 이 작품의 작창 및 도창을 맡는다. 사설 배열 순서를 바꿔 원사설에서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도주하는 대목을 꿈으로 설정해 앞부분에 두고, 극의 결말은 적벽대전으로 마무리한다. 이 연출은 “창극 ‘적벽가’는 승자나 영웅보다 전쟁 당시 죽었던 수많은 민초에게 집중하고 싶다. 조조 유비 이름만 난무하는 원작에서 민초 이야기를 풀려면 이 장면(적벽대전)을 엔딩으로 봐야 한다”며 “소리가 지닌 격조 높은 음악적 힘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창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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