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골프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올 시즌 LPGA투어 22개 대회를 마친 30일 현재 12승을 합작했다. 종전 최다 11승을 뛰어넘는 사상 최고 승수다. 리디아 고(3승)와 이민지(1승) 등 한국계를 포함하면 4승이 더해진다. ‘압도적’이라는 표현 외에 다른 수식어를 찾기 힘들다. 여기에는 박인비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완성과 전인지의 한ㆍ미ㆍ일 메이저대회 석권 등이 녹아 있다.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복귀하는 내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여자골프 금메달도 우리 선수끼리 경쟁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정작 국내로 눈길을 돌리면 골프는 여전히 ‘그들만의 스포츠’로 오해 받고 있다. 서민들 입장에선 고가의 스포츠인데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수도권 회원제 골프장의 경우 평일 18홀 기준 20만~25만원 안팎의 비용이 드는 게 현실이다.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세금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도 골프 대중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회원제 골프장은 매출액의 40%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5월 현재 전국 505개 골프장 가운데 무려 80여 개가 자본잠식 상태에 놓여 있다.
골프는 여타 종목과 달리 산업적인 성격이 강하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골프시장 규모는 23조원에 달했고, 골프장 이용객수는 3,050만 명으로 3,000만 명을 뛰어넘었다. 골프인구도 2008년 381만 명에서 2014년 529만 명으로 급증했다. 최근 수년간 증가세를 이어온 결과 골프시장 규모는 연 10% 안팎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크린골프의 대중화로 20∼30대 골프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점도 특징이다. 베이비 부머(1955~63년생)들의 대거 은퇴로 60대 이상 실버층 골프인구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골프는 특히 노인들에게 적합한 운동이다. 골프가 노인층의 진료비 상승에 제동을 걸어 국가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 한국골프문화포럼(회장 최문휴)과 한국노인체육학회가 공동주최한 세미나에선 골프가 뇌 활동을 활성화시키며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다수 공개됐다. 골프가 노인성 고비용 3대 질환인 치매, 뇌졸중(중풍), 파킨슨병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18홀 라운드를 소화할 경우 남성은 1만2,000보, 여성은 1만4,000보를 걷는 것과 같은 운동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골프 참여는 사회적 의료비용을 경감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골프 대중화 정책에 힘을 실었다.
마침 10월 6일부터 11일까지 인천 송도에서 프레지던츠컵이 열린다. 프레지던츠컵은 미국대표팀과 세계연합팀(유럽 제외)의 남자골프 대항전이다. 2년마다 열리는데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이 첫 개최권을 따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명예 대회장을 흔쾌히 수락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공직사회에 암묵적으로 형성된 ‘골프 금지령’에 단비와도 같은 뉴스였다.
실제 박 대통령이 명예 대회장을 수락하고 골프 대중화에 관심을 보이면서 골프를 금기시해 온 공직사회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지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스포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2차관은 지난 3월 고위공직자로선 처음으로 공개 골프회동을 하고 비용을 더치페이로 계산해 공직사회에 화제가 됐다. 김 차관은 당시 야구, 축구, 배구 등 프로스포츠계 사무총장 5명과 함께 골프 모임을 가진 뒤 “대통령께서 경기 진작과 골프 대중화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어 라운딩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차관이 총대를 멨음에도 공직자들의 골프 눈치보기는 여전해 보인다.
정부의 골프 대중화 정책이 성공하려면 박 대통령의 스포츠 사랑이 좀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의 ‘조용한 여름휴가’는 아쉽게 느껴진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경남 거제시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냈고, 올해엔 청와대 관저에서 주로 독서로 머리를 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지인들과 골프를 치며 느낀 소회를 페이스북에 띄우는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가 진정 골프 대중화가 실현된 날이 아닐까. 박 대통령이 한달 여 앞으로 다가온 프레지던츠컵을 골프 대중화의 전기로 적극 활용하길 기대해 본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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