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조7940억엔 투자 7년 만에 최대
한국 R&D 투자는 日 절반 수준
수년 뒤 경쟁력 추락 우려
일본의 주요기업들이 올해 2008년 이후 최대 규모의 자금을 연구개발(R&D)에 쏟아 붓고 있다. 아베노믹스와 엔저를 등에 업고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한 일본 기업들이 미래를 위한 투자에 일제히 올인하고 있다. 당초부터 엔저 이후 한국 기업들에 가장 위협적인 대목은 일본제품이 당장 가격을 낮추는데 그치지 않고 불어난 이익만큼 신성장 동력을 위한 기술개발에 투자할 것이란 예상이었다. 이같은 예측이 속속 사실로 확인되면서 당장 3, 4년 후면 일본과 경쟁하는 전자, 자동차 등에서 경쟁력 격차가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7면
자동차 업계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제조업은 5~10년 후를 겨냥해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의 조사만 보더라도 주요 268개 기업이 2015회계연도에 계획중인 R&D 투자액은 11조7,940억엔(약 110조4,000억원)에 이른다. 지난 회계연도 실제 투자액보다 4.7% 증가가 예상되는 규모다. 이는 지난해 12월 결산 한국의 496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순이익(61조원)의 두 배에 육박한다. 대규모 R&D에 다소 소극적인 한국기업의 현실과 대조적인 것이다.
반면 일본 기업들의 R&D 투자는 6년 연속 증가추세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자동차 3사가 기업별 순위에서 1~3위를 다투고 있다. 도요타는 친환경자동차와 안전운전 지원을 위한 인공지능 개발 등 올해만 역대 최고액인 1조500억엔(약 14조200억원)을 투자한다. 혼다는 7,200억엔, 닛산자동차도 5,300억엔 등 수천억엔 규모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전기기계업종에서는 소니가 반도체 등에 4,900억엔, 파나소닉이 로봇기술과 주택관련 부문에 4,700억엔을 투자한다.
일본 기업들의 미래선점 구상은 아시아 등 신흥국을 겨냥해 이들 지역에 연구거점을 잡고 인력확충을 추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시아 주요 대학과 산학협력 체제를 구축해 공동연구개발에 나서는 방식이다. 니케이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 대학과 연계를 이미 실시중인 기업은 전체의 4분의 1에 달한다. 상대국ㆍ지역으로 중국이 65.9%로 가장 많고, 싱가포르(20.7%), 태국(17.1%)이 뒤를 잇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쓰 등이 중국의 대표적 명문인 칭화대와 제휴했고, 다이니혼인쇄, 미쓰이화학 등은 싱가포르국립대와 연계하고 있다. 이는 현지 연구인력과 함께 해당국가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일본 기업들이 대규모 R&D 투자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자금사정에 그만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올 3월말 3,500개 상장사의 보유자금은 105조엔대로 전년대비 9% 늘어났다. 엔저 현상에 수혜로 사상 첫 100조엔을 돌파, 2년 연속 최대 실적을 경신한 것이다. 이달 5일 일본정책투자은행이 공표한 올해 설비투자계획을 보면 일본 제조업체들은 전년 대비 24.2% 늘어난 7조5,71억엔의 설비투자도 구상 중이다.
일본 기업들이 치고 나올수록 수년 후 한국기업의 경쟁력 추락은 불을 보듯 훤하다. 도쿄 주재 한국경제계 인사는 “기술개발로 칼을 가는 일본기업은 지금보다 3, 4년 후가 더 무섭다”며 “R&D 투자가 일본의 절반수준인 우리 현실을 볼 때 심각한 비상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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