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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신흥시장 기본부터 다져라

입력
2015.08.30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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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시장에 끼었던 거품이 15년 만에 꺼지고 나니 새로운 통념이 생겼다. 신흥국들이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과거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브라질, 러시아, 터키 그리고 인도를 세계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라면서 이 나라들이 앞으로 끝없이 급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나라에서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9월부터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예측이 한몫하기도 했지만 투자자들은 이 나라들에서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통화 가치도 뚝 떨어졌다. 브라질과 터키 같은 나라들에선 부패 스캔들과 기타 정치적 문제들이 경제 이슈를 덮을 만큼 압도적으로 심각했다.

나중에야 밝혀졌지만 대부분의 신흥시장 국가들 사이에는 사실 성장 스토리의 연관성이 전혀 없었다. 뚜껑을 열어 보니 높은 경제성장률은 일시적 원자재 가격 상승과 유지하기 힘든 공공 대출 또는 민간 대출에 힘입은 국내 수요 때문이었지 생산적인 변화 때문이 아니었다.

신흥시장에 세계 일류 회사가 많은 건 맞다. 중산층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생산적인 기업에 고용된 노동력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나머지 인력들은 생산성이 낮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대열로 나아간 일부 국가들의 경험과 비교해보면 신흥국들에게 무엇이 빠져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대만은 빠른 산업화를 배경으로 성장했다. 한국과 대만의 소작농들은 공장 노동자가 됐다. 경제에 비해 정치 변화의 속도가 좀 느리긴 했지만 두 나라의 경제와 정치는 변혁을 겪었다. 한국과 대만은 결국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대조적으로 오늘날의 대부분 신흥국에선 산업이 너무 일찍 쇠퇴하고 있다. 서비스업은 제조업에 비해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활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서비스 산업이 수출 위주의 산업화를 대체하긴 아직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비관적인 전망으로 신흥시장을 대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 신흥시장의 거품이 꺼지는 현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진짜 교훈이 있다. 불필요하게 하나로 묶인 경제 그룹 내부에 다양한 환경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하고, 경제 성장에 필요한 토대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 도상에 있는 나라의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세 가지 토대가 있다. ▦노동력의 기술ㆍ교육 습득 ▦정부와 기관들의 체질 개선 ▦저생산성에서 고생산성 활동으로 옮겨가는 구조적 변화(흔히 산업화로 대표된다). 동아시아 스타일의 급속 성장을 하려면 수십 년간 대규모의 구조적 변혁을 겪어야 한다. 또 교육과 기관들이 꾸준히 발전해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있는 장기적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동아시아 경제와 달리 오늘날 신흥시장 국가들은 공산품 수출 흑자를 동력 삼아 구조 변혁과 성장을 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들은 장기에 걸친 교육과 기관이라는 토대에 더욱 의지해야 한다. 그런 토대가 정말 성장을 만들어내고, 궁극적으로 성장에 필수적이다. 그래 봐야 기껏 동아시아의 7~8%가 아닌 2~3%의 성장률을 이끌어낼 뿐이다.

중국과 인도를 비교해보자. 중국은 공장을 세운 뒤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소작농들을 거기에 채우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생산성이 급상승했다. 인도의 상대적 이점은 정보통신기술 같은 기술집약적인 서비스업에 있다. 인도의 노동력은 기술을 갖추지 못해 이런 업종에서 일하는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인도의 평균 기술 수준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눈에 띄게 향상시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최근 몇십 년 간 인도의 중기 성장잠재력은 중국보다 훨씬 낮았다. 사회기반시설 지출을 눈에 띄게 늘리고 확실하게 정책을 개혁하면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중국과의 격차를 줄이진 못할 것이다.

경제 성장 경쟁에선 토끼가 되는 것보다 거북이가 되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 경제 전반에서 꾸준한 기술을 축적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나라들은 빠르게 성장할 수는 없어도 더 안정적이 될 수 있고 위기에 직면하는 일이 훨씬 적어 결국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국 경제의 성과를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이 정치를 독점하는 독재국가다. 그래서 정치와 기관을 변혁하기가 인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렵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장기 투자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불확실성도 크다.

브라질을 다른 신흥시장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그 중에서도 최근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국가일 것이다. 주력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를 둘러싼 부패 스캔들은 통화가치를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성장을 멈추게 할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 하지만 브라질의 정치 위기는 이 나라가 얼마나 민주적으로 성숙했는지 보여준다. 분명 이 위기는 브라질의 약점보다 강점을 보여주는 징표다. 검찰 수사가 정치적 간섭을 받거나 마녀사냥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겪지 않고 브라질 사회와 정부의 최고위층까지 손을 댈 수 있을 정도라는 건 많은 선진국에 좋은 본보기가 된다.

브라질과 터키는 더없이 대조된다. 터키가 얼마나 부패했는지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의 가족에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터키 검찰이 2013년 그를 조사한 것은 분명히 정치적인 동기가 있었다(망명한 이슬람 성직자 페툴라 귤렌이 선봉에 서고 에르도안 대통령의 적대세력이 주도했다). 그 때문에 정부는 마음 편하게 수사 내용을 파기할 수 있었다. 터키 경제는 브라질만큼 큰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부패한 정치는 장기적으로 경제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값싼 외부 금융과 풍부한 자금 유입 그리고 원자재 가격 상승은 신흥시장이 지닌 많은 단점을 가려주었고 15년간 성장하는 원동력이었다. 세계 경제는 앞으로 몇 년간 강한 역풍을 맞을 것이다. 경제ㆍ정치적 토대를 진정으로 강하게 만든 나라와 헛소문, 변덕스런 투자 심리의 하찮은 힘에 좌우되는 나라를 구별하기는 더욱 쉬워질 것이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ㆍ경제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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