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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헛돈 쓰지 말자

입력
2015.08.2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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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비싼 자전거를 타야만 할 것 같아서 자전거 입문을 망설인다면, 지금 당장 싼 녀석을 골라 타는 것이 남는 장사다"

두바퀴찬가 대문을 열며 김민호기자가 쓴 글 '‘얼마짜리 자전거’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타라'에 나온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무턱대고 일단 사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내가 그랬다.

손목에 철심을 박기(손목에 철심을 박고도 자전거를 타는 이유) 전까지 탔던 내 자전거는 대만에 본사를 두고 있는 자이언트(Giant)의 이디엄시티(Idiom city)였다. MTB(Mountain Bike)라 하는 산악용 자전거와 싸이클이라고 부르는 도로용 자전거의 중간인 ‘하이브리드’ 형태로 웬만한 언덕도 큰 힘 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고 평지에서는 제법 속도도 나오는 자전거다.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여의도로 자전거 데이트를 갔다 예쁘고 깔끔한 자전거가 많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자극 받아 집 근처 자전거 가게에서 데이트 다음날 바로 구입했다.

내 첫 자전거인 자이언트사의 이디엄시티. 북악산에 올라 촬영한 사진이다. ‘깔맞춤’을 위해 음료수도 푸른색으로 골랐다.
내 첫 자전거인 자이언트사의 이디엄시티. 북악산에 올라 촬영한 사진이다. ‘깔맞춤’을 위해 음료수도 푸른색으로 골랐다.

서울 생활 ‘첫 차’였다. 우선 흰색에 하늘색이 적절하게 섞인 색깔이 마음에 들었다. 곡선 형태의 프레임도 멋지다고 느꼈다. 흔히 기어 또는 기아라고 하는 것도 무려 24단(=앞 체인링 3단 × 뒤 스파라켓 8단)이었다. 일부 언론사에서 신문 구독하면 제공했던 자전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 정도면 못 갈 곳이 없다. 당시 정가가 43만원이었는데 3만원을 할인해 준다는 가게 사장님의 말에 구매를 멈출 이유가 없었다.

새 차는 주로 한강 자전거 도로로 끌고 나갔다. 매연 냄새가 살며시 묻어나는 한강 바람을 맞으며 매끈한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는 일은 비료 포대에 지푸라기를 넣어 공동묘지에서 미끄럼을 탔던 산골짜기 촌놈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해가 떨어지면 손전등을 들고 다녀야 했던 시골에서 밤에 페달을 밟는 행위는 ‘미친 짓’이었다. 서울은 완벽하게 달랐다. 가로등이 빈틈없이 밝혀주는 서울의 밤길은 매미에게 낮과 밤의 분간을 어렵게 할지언정 자전거족에게는 축복이다. 차가워진 도시 밤공기를 흡입하며 달리면 영락없이 자전거 타는 차도남이다. 거기다 자전거에 ‘이디엄 시티’ 라는 글자도 영어로 새겨져 있으니 매우 이상적인 '도시 자전거 생활'이다.

하지만 잠시였다. 행복에 적응하는 속도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풍광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렸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이 타고 있는 자전거에 눈길이 사로잡히면서부터다. 길바닥에는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자전거들이 수두룩했다. 그 영롱한 자태 위에 올라탄 모습을 상상만 해도 설렜다. 외모가 끝이 아니었다. 멋진 자전거들은 소리가 달랐다. 바퀴에서 매미가 맴맴 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떤 자전거는 또르르 귀뚜라미 소리를 냈다. 금속이 내는 마찰음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것인가. 거기에 모든 것을 갖춘 이 녀석들의 무게는 내 자전거의 절반도 안됐다.

한 달도 안된 내 새 차가 고철덩어리로 보인다. 다른 자전거를 사야 되는 이유를 따지기 시작한다. 일자 핸들은 손바닥을 아프게 한다. 알루미늄 프레임은 노면의 형태를 고스란히 사타구니에 전달한다. 무겁다. 느리다. 오래 타면 피곤하다. 결정적으로 못 생겨 보인다. 그렇게 마음 속에서 떠나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교통사고가 났다. 난생처음 수술을 했다. 한동안 병원 신세도 졌다. 치료기간도 길어져 오랫동안 자전거 핸들을 잡지 못했다. 대신 인터넷으로 열심히 새 자전거를 찾았다. 이듬해 바퀴가 가늘고 몸매가 날씬하게 잘빠진 로드 바이크로 갈아탔다. 그리고 신세계가 열렸다.

두번째 자전거는 캐논데일 슈퍼식스5. 출근 전 집 앞에서 찍었다.
두번째 자전거는 캐논데일 슈퍼식스5. 출근 전 집 앞에서 찍었다.
비 온 다음날 잠수교에서 찍었다. 3년 넘게 탔지만 질리지 않는 녀석이다.
비 온 다음날 잠수교에서 찍었다. 3년 넘게 탔지만 질리지 않는 녀석이다.

나의 두번째 자전거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캐논데일(cannondale)에서 만든 슈퍼식스5(Supersix 5)라는 녀석이다. 반짝이는 외모를 닮아서인지 성격은 낭창했다. 길바닥의 불만을 혼자 감당했다. 전 자전거가 20만 km 넘게 탄 용달차였다면 이 녀석은 고급 승용차가 분명했다. 타 본 적은 없지만 독일제 고급 세단이 그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 페달을 밟음과 동시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가벼웠다. 시도해 본 적은 없지만 두 손가락만으로도 들 수 있을 것이다. 3년 조금 넘는 시간동안 5,000km 를 넘게 함께 하고 있다.

지난 봄 출근 전 집 앞에서 자전거와 찍은 셀카
지난 봄 출근 전 집 앞에서 자전거와 찍은 셀카

자연스레 전 자전거는 애물단지가 됐다. 그 녀석에게 잠금장치, 전조등, 후미등, 페달 등 이것저것 들인 돈이 꽤 됐는데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비좁은 방에 자리만 차지했던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출됐다.

자전거를 일단 타기 시작하면 페달 밟는 재미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매력에 빠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전거 안장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게 된다. 무턱대고 구입한 자전거가 내 몸과 마음에 맞을 확률은 매우 낮다. 자전거를 구입하기 전에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탈 것인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김민호기자가 직접 타보고 추천하는 용도별 자전거). 적당히 예산에만 맞춰 덜컥 구매했다간 나처럼 자전거를 두 번 사게 된다.

자전거 뭘 사야 되냐고 묻는 사람에게 단호하게 얘기한다. 염두에 둔 예산보다 더 쓰라고. 예산이 올라가면 구매과정은 더 신중해지고 자전거의 디자인과 성능은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이게 중복 투자를 막는 방법이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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