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살람알레이쿰. 당신의 평화를 빕니다. 아랍어로 인사를 건네니 그녀는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검은 차도르에 검은 장갑을 낀 그녀의 이름은 모나였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옆 집 아줌마가 말을 걸더니 나를 집안으로 데려갔다. 그 집에서 차와 저녁 식사를 대접받고 나온 후에는 모나의 집으로 갔다. 이런 일이 그 땅에서는 예사로 일어났다. 길을 물으면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고, 눈만 마주쳐도 집으로 불러들였다. 한 달 남짓 그 나라에 머무는 동안 가장 자주 들은 말이 “Welcome”이었다. 경계가 없고,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물가는 저렴했고, 음식도 맛있고, 사방에 근사한 유적지가 넘쳐났다. 여행자들마다 중동에서는 여기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지난 일요일 그 나라의 위대한 유산이 사라졌다.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팔미라의 바알샤민 신전을 폭파했다. 고대 페니키아의 폭풍과 비의 신 바알샤민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2,000년 동안 서 있던 유적이었다. IS는 신전을 파괴하면서 팔미라 유적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고고학자를 참수해 유적지 기둥에 매달았다. 그가 안전한 곳으로 빼돌린 보물들의 소재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BBC의 보도를 통해 IS 대원들이 팔미라의 조각을 망치로 부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옛 기억이 떠올랐다. 팔미라에는 사원의 기둥에 낙타를 매어놓고 관광객을 기다리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낙타에 기대어 하루를 살고, 하루의 밥벌이를 마치면 낙타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관광객을 낙타에 태워 유적지를 돌고 받은 돈으로 쌀을 사고,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그 아버지들은 어디로 갔을까. 팔미라뿐 아니라 알레포에서, 하마에서, 다마스커스에서 수많은 이들이 생계를 잃었을 것이다. 시리아는 더 이상 관광객이 오지 않는 나라가 되어 버렸으니. IS는 단지 하나의 사원을 파괴한 것이 아니다. 그 사원에 기대어 살아온 수많은 이들의 일상을 함께 붕괴시켰다.
십자군 전쟁 당시 이 나라의 군주 살라흐앗딘은 기독교의 성묘를 파헤치자는 강경파의 주장에 “천국의 가장 큰 속성은 자비”라며 맞섰다. 8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IS는 이교도의 우상 숭배 대상이라는 이유로 인류의 유산을 파괴했다. 저토록 선과 악이 선명하게 갈리는 세계라니, 저토록 명확한 자기 확신과 도덕적 우월감이라니. 권력을 쥔 이가 자신의 세계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때, 주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과 절망에 빠져든다. 시리아는 퇴행을 거듭할 것이다. 총을 든 권력 앞에 무릎 꿇고, 생존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될 것이다. IS가 사라져도 그들의 흔적은 오래 남을 것이다. 구멍 뚫린 심장을 부여안고 살아남은 이들 모두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앓게 될 것이다.
시리아의 참혹한 상황을 지켜보며 내가 사는 이 땅은 안전한 곳일까 의문이 들었다. 내 생각이 유일한 진리라는 근본주의적 사고, 소통이 사라지고 권위에만 의존하는 통치, 상식과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 만연한 생존 본능의 법칙. 우리는 이미 IS가 장악한 시리아와 닮아있다. ‘국론분열’이라며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고, 일방적인 애국심을 강요하는 허약한 국가가 우리의 얼굴이다. 나와 너를 가르는 단정적이고 선정적인 말과 이미지에 갇혀 있다. 갑과 을, 종북과 수꼴, 김치남과 김치녀, 금수저와 흙수저….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은 ‘헬조선’을 벗어나야겠다며 ‘탈조선’을 위한 ‘이민계’를 만들고 있다.
인류가 지금껏 이룬 모든 진보는 당대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했다. 확신을 경계하고, 질문하는 개인이 모인 사회가 건강하다. 권위와 진리에 대한 끝없는 의심이 우리를 이끄는 등대가 되어줄 수는 없을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기 전에.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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