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의 ‘과학은 반역이다’는 주로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쓴 서평에 다른 지면에 실렸던 글 일부를 추가해서 주제별로 4부로 나눠 연대순으로 배열한 책이다. 그의 서평 한 꼭지는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서평의 거의 10배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이다. 그 긴 글 속에서 자신이 소개하는 책 한두 권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게 아니라 그 책에서 다루는 주제 전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한다. 그래서 이 책은 서평 모음집이라기보다 온전한 에세이로서 읽게 된다.
올해 92세인 프리먼 다이슨은 영국 태생으로 1947년 미국의 코넬대학원(뉴욕주 이타카에 있다)에 유학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한스 베테, 리처드 파인만 등과 함께 연구하면서 생의 대부분을 프린스턴고등연구소의 교수로 살았다. 지명도에 있어서는 아인슈타인, 파인만, 스티븐 호킹 등의 저명한 과학자에 조금 못 미치지만 그들과 함께 20세기 이론물리학 특히 핵물리학을 이끌어간 역사적 주역이며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슨의 풍부하고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진귀한 책이다.
과학은 반역이라는 제목이 멋진 제목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가 거의 1세기에 걸쳐 겪었던 다양한 과학과 과학자, 그가 살며 겪은 폭넓은 궤적을 담아내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고, 치우친 제목으로 보인다. 책을 다 읽고 난 직후 이론 물리학자로서의 다소 딱딱한 분일 거라는 프리먼 다이슨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완전히 무너졌다. 열정적인 과학자인 동시에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번득이는 천재성과 넉넉한 인간적 포용력을 함께 가진 친근한 선생님 한 분을 알게 된 느낌이다.
그의 청소년기는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전개된다. 아마 그 때 만났던 선생님의 영향으로 프리먼 다이슨은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진리 탐구를 사랑하며, 폭넓은 인문적 지식과 교양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연구한 핵물리학 분야는 인류의 가장 큰 재앙의 씨앗이 되었다. 그는 핵무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한가운데 있었던 생생한 목격자로서 개별 과학자들이 이때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상세히 기술한다. 과거의 과학은 인습에 대한 반역이었다. 또한 현대에 들어와서도 파괴력이 예상되는 과학 지식의 생산자가 그것의 활용을 자본가와 관료들에 손에 맡겨버려서는 안되고 비판적인 감시와 저항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과학은 반역이라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는 아인슈타인, 텔러, 뉴턴, 오펜하이머, 노버트 위너, 파인먼 등 수많은 과학자는 물론, 프란시스 베이컨과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과 학문, 주장과 쟁점,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환원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이다. 세상을 이루는 기본 구성요소의 성질로 세상 전체를 이해하려는 환원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생물학의 눈부신 발전까지 환원주의의 혐의를 두는 것은 편협한 시선이다. 그의 철학은 닐스 보어의 상보성 이론에 근거하는데, 이 이론 역시 환원의 결과여서 아이러니컬하다.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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