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날의 차가운 맥주처럼 난 차갑고 냉정하게 떠나 왔다네’
짙은 눈화장에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한 여인이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고해성사하듯 가사를 읊조린다. 리키(메릴 스트립)는 젊은 시절 꿈이었던 음악을 위해 딸과 두 아들을 전 남편 피트(케빈 클라인)에게 맡긴 채 가족을 떠난 매정한 엄마다.
그렇다고 그녀의 생활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낮에는 마트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록밴드 ‘더 플래쉬’의 리더로 나선다. 근근이 생활하는 그녀이기에 아들을 위한 근사한 결혼식 선물 같은 건 애초에 포기했다. 아이들을 떠났지만 버린 건 아니라는 엄마의 마음을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음악으로 전할 뿐이다. 가족간 이별을 낳은 음악으로 서로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다.
뻔한 가족영화지만 메릴 스트립(67)의 뻔하지 않은 변신과 노력으로 완성도 있는 작품이 됐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고집불통 편집장 미란다, ‘철의 여인’(2011) 속 마거릿 대처, ‘숲 속으로’(2014)의 무시무시한 마녀로 둔갑했던 변신의 귀재는 또 한 번 일을 냈다. 철저하게 로커로 다시 태어났다.
영화에 캐스팅된 후 처음으로 기타를 배운 그는 3개월 간 어쿠스틱과 전자 기타를 두루 섭렵하고 완벽한 연주를 해낸다. 영화 속 공연 장면은 실제로 메릴 스트립이 연주하고 노래한 ‘올 라이브’다. 이미 영화 ‘맘마미아’(2008)에서 도나 역으로 멋진 노래 실력을 뽐낸 적이 있다. 이 때 메릴 스트립의 나이가 환갑이었다. 나이를 잊은 그녀의 열정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한다.
극중 딸로 출연하는 메릴 스트립의 친 딸 마미 검머(33)도 눈 여겨 볼만하다. 영화 ‘이브닝’(2007)에서 메릴 스트립의 젊은 시절 역으로 살짝 등장한 적이 있는 마미 검머는 엄마를 쏙 빼닮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평소에 무척 사이가 좋은 모녀의 관계를 감독 조나단 드미가 갈라 놓곤 했다는 것. 극중 20년 간 떨어져 지내 소원해진 관계를 보여줘야 해서다. 촬영장 밖에서도 두 사람에게 ‘대화 금지령’이 떨어졌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내내 이들은 정말 오랜 만에 만나 서먹해진 모녀처럼 실감난 연기를 펼친다. 남편의 외도로 폐인이 되다시피 한 딸을 데리고 나가 헤어스타일도 바꿔주고 쇼핑도 함께하는 리키의 모습은 티격태격하는 평범한 모녀 사이 그 자체다.
영화를 본 뒤 일찍 자리를 뜨지 말 것을 권한다. 엔딩크레딧에 메릴 스트립의 공연이 삽입돼 있다. 그녀가 부른 ‘콜드 원’은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주제곡이다. 9월 3일 개봉, 15세 관람가.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