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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사라지는 금융산업… 백년 만의 '빅뱅'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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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사라지는 금융산업… 백년 만의 '빅뱅' 온다

입력
2015.08.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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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행 도입·간편결제 확대

KT 등 이종업체들까지 경쟁자로

은행·보험·증권 복합점포 출현에

계좌이동제로 고객 칸막이도 무너져

금융업계 무한경쟁 시대 예고

"생존 위해 과감한 혁신 필수" 지적

#. 통신업의 오랜 강자인 KT그룹이 보유한 직영 대리점의 수는 약 330여개. 은행으로 치면 기업은행(650개)보다는 적고, 부산은행(273개)보다는 많다. KT그룹은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이 대리점들에서 금융 상품을 상담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가칭 ‘KT은행’이다. 터무니 없는 상상은 아니다. 일본 통신사인 KDDI는 인터넷 전문은행 ‘지분뱅크(JiBUN Bank)’의 2대주주로 전체 수익의 30% 이상을 은행서비스에서 창출하고 있다. KT는 은행업 진출을 위해 전담팀을 꾸리고 현재 교보생명, 우리은행 등과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막바지 협상을 진행 중이다.

#. KB국민은행의 올 상반기 수수료 수익은 총 5,956억원. 초저금리로 갈수록 줄어드는 이자 수익을 메워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최근 이런 수수료의 일부를 면제하는 ‘결단’을 내렸다. 신규 고객에게 ▦전자금융 타행이체 ▦자동화기기 시간외 출금 ▦타행자동이체 등 3가지 수수료를 무제한 면제해주는 상품을 선보인 것이다. 그러자 경쟁은행인 신한은행도 26일 기존 상품에 ‘수수료 무제한 면제’ 조건을 추가하며 반격에 나섰다. 모두 10월부터 시행되는 계좌이동제를 앞둔 사전 포석들이다.

지난 수십년 간 정부가 정해 준 울타리 안에서 ‘조용한’ 경쟁을 펼쳐 온 국내 금융산업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몰려 오고 있다. 길게는 우리나라에 처음 은행이 설립된 1900년대 초 이후 백 년 여 만의 변화다. 복합점포 시행으로 은행·보험·증권으로 나뉜 금융산업 내 전통적인 경계가 의미를 잃고, 계좌이동제와 내년 도입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은행 지점 직원이 이제는 인근 증권사 직원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금융산업 내부만이 아니다. 여기에 KT 등 전혀 다른 DNA를 가진 기업들까지 금융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면서 기존 금융사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간의 시장 경쟁의 판도가 근본부터 바뀌는 ‘금융빅뱅’이 시작되는 셈이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혼란을 동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사들의 철저한 대비, 일관된 정책, 현명한 소비 행태 등이 어우러져야 다가올 금융빅뱅 시대가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7일 금융권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가장 큰 변화의 바람은 외부에서 불어오고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업 참여를 금지해온 금산(金産) 분리의 족쇄를 풀어 인터넷전문은행이란 새로운 경쟁시장이 탄생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달 예비인가를 앞두고 다음카카오와 SK텔레콤, KT, 인터파크, GS홈쇼핑 등 금융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기업들이 벌써 새 경쟁의 링 위에 오르기로 확정한 상태다. 다음달 삼성페이가 출시되는 등 글로벌 ICT 기업들의 모바일 간편결제 시장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금융산업의 잠재적인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기존 사업자인 은행권과 증권, 저축은행 등 제 2금융권 기업들도 ICT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제 금융사들은 동종 업계 기업이 아닌 전방위적인 경쟁사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며 “1992년 평화은행 이후 23년간 신규진입자가 없던 은행권에 새롭게 등장할 인터넷은행이 이 같은 변화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금융업권 간 칸막이를 허무는 제도들도 중대한 변화의 신호다. 금융업의 보신주의를 타파하고 산업 내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업종 간 칸막이 규제 철폐에 나서고 있다.

기존 판매 채널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시행중인 복합점포가 대표적이다. 금융위는 은행과 보험, 증권 업무를 모두 할 수 있는 복합점포를 금융 지주사별로 3곳까지 허용해 2년간 시범 운영하기로 한 상태다. 고객 입장에선 이왕이면 여러 업무를 볼 수 있는 복합점포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금융기관들도 자산관리나 기업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종 간 협업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리은행은 삼성증권이 4월 복합점포를 개설했고, 전북은행과 현대증권과 복합점포를 내기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특히 금융지주사들은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분야를 보완하려는 노력에 열심이다. KB손해보험(옛 LIG손해보험) 인수에 이어 올 하반기 대우증권 인수까지 검토하고 있는 KB금융지주가 대표적이다.

굳건했던 업권 내의 고객 칸막이도 무너지는 추세다. 사실상 자동이체를 볼모로 고객들을 붙잡아왔던 은행들에 비상이 걸리게 한 계좌이동제를 비롯해, 내년 초 시행되는 ISA도 이 같은 변화에 기름을 부을 공산이 크다. 예금·대출만 가능했던 은행 계좌에서 펀드나 파생상품을 자유롭게 갈아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ISA계좌에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업권을 넘나드는 다양한 융합 상품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다.

다만 이 같은 변화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과 함께 관치의 울타리에 안주해온 금융회사들의 과감한 혁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높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칸막이를 낮추려는 시도가 성공하려면 정부의 제도개선 노력과 함께 칸막이가 없어진 이후의 금융시장을 책임지고 이끌고 나가야 할 금융회사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다가 올 금융빅뱅은 IT기술과 접목돼 소비자의 편리성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산업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며 "산업 간 경계는 물론 국경 없는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이런 흐름에 한번 뒤쳐지면 사실상 시장에서 도태되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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