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이후 사용된 목간 등 발견
지난해 10월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해역에서 발견된 마도 4호선이 조선 초인 15세기 조운선(漕運船ㆍ지방에서 거둔 조세미를 중앙으로 운반하는 배)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한반도 연근해에서 발굴 중인 고선박 14척 중 유일한 조선시대 선박이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6일 마도 4호선에 대한 정밀발굴 조사결과 중간 발표를 통해 조운선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밝혔다. 결정적인 증거는 화물의 발신처와 수신처, 종류와 수량 등이 적힌 목간(木簡) 39점과 죽찰(竹札) 22점이다. 목간과 죽찰은 종이가 없던 고대에 기록용으로 사용한 나무와 대나무 조각으로 종이 사용이 일반화된 고려 이후에는 발굴된 사례가 거의 없다. 임경희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15세기 이후 사용된 목간이 발견된 것은 동아시아에서 처음”이라 밝혔다.
대다수(52점) 목간과 죽찰에 ‘나주광흥창(羅州廣興倉)’이라 적힌 것으로 보아 이 배의 화물은 전남 나주 조창인 영산창(榮山倉)에서 중앙 관리들에게 녹봉을 지급하는 기관인 서울 마포구 창전동 광흥창으로 보내진 것으로 해석된다. 영산창은 당시 전라도 광양과 순천 등의 세곡을 관리, 저장해 도성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했다. ‘맥삼두(麥三斗ㆍ보리 세 말)’ ‘백미십오두(白米十五斗ㆍ흰 쌀 열다섯 말)’라고 적힌 목간 7점도 확인돼 세곡 운반 사실을 뒷받침한다.
마도 4호선은 길이 13m, 폭 5m, 깊이 2m로 밑판이 3열로 짜인 평저선(平底船ㆍ바닥이 평평한 배)이다. 고려시대 배와 달리 배의 겉 구조인 좌우 외판재를 연결하는 가룡목(加龍木)이 3겹 혹은 4겹으로 견고하게 구성돼 조선 기술의 발전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선박 구조를 그려놓은 ‘각선도본(各船圖本)’에서 나타나는 조운선의 특징이기도 하다.
배의 침몰 시점은 함께 출수된 분청사기 143점을 통해 조선 태종~세종 시기인 1417년에서 1420년대 사이로 추정된다. 발 1점과 접시 2점에 ‘내섬(內贍)’이라는 글씨가 쓰여있는데, 중앙 관청에 지역의 토산물을 납품하는 기관으로 1403년 설립된 내섬시(內贍寺)를 뜻한다. 박경자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17년(태종 17)에 세금으로 바쳐진 물품에 물건을 사용하는 관청 명칭을 표기하라는 조치가 내려졌다”며 “마도 4호선의 분청사기는 중앙 관수용으로 1417년 이후 제작된 것”이라 설명했다. 또 “1421년(세종 3)에는 각 그릇에 장인의 이름이나 그릇을 만든 지역의 이름을 표기하도록 했는데 이 표기가 없기 때문에 늦어도 1420년대에 만들었을 것”이라 추정했다. 분청사기에 장식된 승렴문(繩簾文ㆍ새끼줄 문양)과 집단국화문(集團菊花文ㆍ가득 채운 국화 문양) 역시 15세기 초 전형적인 공납용 자기 양식이다.
이밖에 세곡으로 선적한 벼와 보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라도 나주목 토산품으로 기록된 대나무와 숫돌 등도 함께 출수됐다. 2014년 10월 마도 4호선 1차 발굴 당시 주변에서 18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 111점이 나와 조선 후기 선박으로 추정됐으나, 정밀 발굴조사 결과 이 백자는 마도 4호선과는 관계 없이 유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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