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요?” 가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오래된 논쟁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쟁이다. 이 자리에서 그것을 반복할 생각은 없다. 모든 직업에는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는 남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문학적 자서전인 ‘읽는 인간’에서 쉰 살을 앞두고 찾아온 고민을 술회한다. “‘별 의문도 없이 인생의 갈 길을 정하고 달려온 내가 과연 이대로 문학을 해도 될까’, ‘슬슬 스스로를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 쉰 살이 된다면 돌이킬 수 없다, 문학 이외의 새로운 전공을 찾아 그 일을 제대로 하려면 빠듯하게 해도 쉰은 넘어야 하지 않을까, 대충 그런 생각에 잠겨 있었지요. 아무튼 제 성격도 참 낙천적입니다. 보통은 쉰이면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텐데요(웃음).”
그건 분명 중요한 태도다. 하지만 비관적인 전망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살면서 낙천적이 되기는 쉽지 않다. 비관적인 전망으로 가득한 업계에서 일하면서 낙천적이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해야 할까. 한 마디로, 말이 씨가 된다는 거다.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TV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찾아서’ 때문이다. 김준선의 데뷔곡 ‘아라비안 나이트’가 화제를 모으며 리처드 버턴의 ‘아라비안 나이트’도 덩달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1993년 7월 12일자 연합뉴스 기사가 나왔다. 기사는 출판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불황을 맞고 있는 출판계에서는”이라는 수식을 달고 있었다. 나는 출판계 불황이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궁금해졌다.
나는 검색창에 ‘출판계 불황’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했다. 2000년 이전까지 542건, 2000년 이후로 1,994건의 기사가 나왔다. “경기 불황 불구하고 출판계 활황” 같은 경우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적은 수치는 아니다. 정말 놀라운 건, 가장 오래된 기사가 “출판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11만부가 나왔다 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1932년 8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라는 사실이었다. 1932년이라니, 세상에. 11만부라니, 맙소사!
한동안 잠잠하던 출판계 불황 기사는 1955년에 다시 등장한다(“한국출판계는 거의 자멸의 방향으로 기울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불황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1955년 1월 23일, 동아일보). 그리고 그 후로 2015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된다. 무려 60년 동안의 불황이다. 나는 ‘출판계 호황’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한 번 검색했다. 결과는 모두 234건, 그마저도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불황과 달리 “작년까지 호황이었던 출판계”라는 식의 과거형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걸 불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냥 그게 기본값 아닐까.
오에 겐자부로를 따라 자기검토를 해야 할 시점이었다. 과연 나는 서른 다섯이라는 나이에 글을 쓰는 일 말고 새로운 전공을 찾아 그 일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낙천적인가. 혹은 단 한 번도 불황이 아닌 적 없는 업계에서 계속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만큼 자신만만한가. 대답은 모두 ‘아니오’였다. 그럼 나는 대체 이 일을 왜 하는 걸까?
사실 그건 자기충족적 예언 때문이다. 어린 시절, 늦잠을 실컷 잤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수천 번도 더 빌었다는 발터 벤야민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 소원은 정말로 실현되었다. 그것은 일정한 지위와 안정된 봉급을 받고 싶다는 희망이 번번이 좌절되었을 때에 일어났다. 바로 그때 나의 옛 소원이 실현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 역시 같은 소원을 빌었고, 그것은 이루어졌다. 유감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다.
금정연 서평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