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먼저 보낸 시어머니(김혜리)가 며느리(심이영) 방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다. 자신의 컴퓨터로 며느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더니 결국 미행까지 한다. 그러면서 “남자 없인 못 살겠어? 다른 남자들과 잘도 놀아난다”며 폭언을 퍼붓는다. 지난주 방송된 SBS 아침드라마 ‘어머님은 내 며느리’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를 포함해 KBS 월화드라마 ‘별난 며느리’, MBC 일일드라마 ‘위대한 조강지처’ 등 지상파 방송 3사 드라마들이 고부 갈등을 극단적으로 묘사해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표방한다는 방송사들의 기치와는 전혀 달리, 고부 갈등이라는 오래된 막장 코드를 다시 들고 나왔다는 지적이다.
몰래 카메라 내용이 나간 날 SBS 시청자 게시판에는 “몰카라니. 대놓고 범죄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막장이라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도를 지나친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등의 항의성 글이 올라왔다.
극중 시어머니들은 하나같이 며느리에게 폭언을 쏟아내고 심지어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 17일 첫 방송된 ‘별난 며느리’에선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시어머니(김보연)가 자신의 지시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며느리(손은서)의 팔을 깨물어 상처를 내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분이 풀리지 않은 시어머니는 며느리 몰래 집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고 급기야 아들에게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자장가를 부르도록 한다.
‘위대한 조강지처’의 시어머니(양희경)도 며느리(황우슬혜)에게 인신공격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여동생이 찾아와 며느리가 남편과 함께 일하는 가게를 비우자 시어머니는 “이래서 부모 없이 막 자란 사람은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며 격노한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남편에게 병원 치료를 요구하는 며느리에겐 “네 심리상태부터 싹 개조해서 오면 그때 가서 우리 아드님한테 치료를 받으라고 하겠다”며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억지를 부린다.
사실 고부 갈등은 과거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한때 호랑이 시어머니 앞에서 벌벌 떨기만 하던 여성들이 사회적 지위가 오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할 말은 하는 며느리’로 그려지는 등 드라마 속 고부관계는 크게 달라졌다. 최근 드라마 속 극단적인 고부 갈등은 이 같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인데도, 시청률에 급급해 자극적인 소재라면 닥치는 대로 활용하고 보는 제작진의 무리수란 지적이 많다. 케이블ㆍ종합편성채널 등 경쟁 채널이 많아지면서 입지가 좁아진 지상파 방송들이 주 시청층인 중ㆍ장년 여성을 공략하기 위해선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 고부 갈등을 다루고, 화제를 일으키기 위해 점점 극단적인 설정을 한다는 것이다. ‘별난 며느리’의 박기호 CP는 “12부작으로 제작돼 속도를 강조하다 보니 캐릭터를 강하게 부각시킬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현실의 고부관계를 왜곡시킬 수 있는 부작용이 크다”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비슷한 상황에서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란 부정적 학습효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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