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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에 1만원 인데… 착즙주스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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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에 1만원 인데… 착즙주스 열풍

입력
2015.08.2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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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시금치·사과·레몬 등

채소·과일 압착해 엑기스만 추출

영양 불균형 우려 적고 맛도 좋아

다이어트·한 끼 식사로 인기

몸 속 독소 배출 '주스 클렌즈'

부종에 효과 커 성형 후 필수 코스

맛있게 먹으면서도 디톡스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는 착즙주스는 과일보다 채소 재료의 비중이 높다. 먹을수록 혀가 순해져 같은 주스도 더 달게 느껴지지만, 열량은 병당 200㎉ 이하로 높지 않다. 왼쪽부터 당근, 자몽, 케일과 시금치, 사과와 비트를 주재료로 한 착즙주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맛있게 먹으면서도 디톡스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는 착즙주스는 과일보다 채소 재료의 비중이 높다. 먹을수록 혀가 순해져 같은 주스도 더 달게 느껴지지만, 열량은 병당 200㎉ 이하로 높지 않다. 왼쪽부터 당근, 자몽, 케일과 시금치, 사과와 비트를 주재료로 한 착즙주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길모퉁이만 돌아서면 새로 생긴 것이 주스바(Juice Bar)다. 그깟 주스, 마트에서 페트병째 사다 먹으면 될 일이지, 무슨 ‘바~아’씩이나 찾아가서 마신단 말인가? 여기서 말하는 주스는 그러나 그 주스가 아니다. 일단 가격이 한 잔에 1만원 정도 한다. 다양한 과일을 통째로 갈아주던 종전의 생과일 주스와도 다르다. 이른바 착즙주스. 물도 시럽도 첨가하지 않은 채 채소와 과일의 즙만 짜내고 나머지 건더기는 버린다. 말 그대로 엑기스만 뽑아낸 럭셔리 프리미엄 주스다.

체내 디톡스 효과가 커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신묘한 비법으로 젊은 여성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착즙주스는 마치 스타벅스 등장 초창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란다 커와 귀네스 팰트로가 자주 먹고 몸매를 유지한다니 나도 먹어보자는 단순한 모방심리만은 아니다. 어떻게 식단에 더 많은 채소를 들일 것인가가 이미 음식 트렌드를 좌우하는 화두가 되었다. 정원에서 식탁까지 곧바로 운반되는 녹색 식재료에 대한 갈망이 원룸 옥상에 루콜라를 키우는 ‘도시농부’ 붐을 일으킨 세상이다. 한잔 디저트가 아닌 한끼 식사 대용으로까지 부상한 착즙주스는 음식을 둘러싼 세간의 인식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결정적 음료다. 미국 뉴욕에서 로푸드(생식)를 공부한 디톡스 전문가 경미니 에너지키친 대표를 만나 착즙주스에 대해 물었다.

● 채소를 가장 많이 먹을 수 있는 방법

“착즙주스는 채소를 가장 많이 먹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에요. 커다란 당근 세 개를 한꺼번에 먹을 수는 없지만, 당근 착즙주스 한 잔은 쉽게 마실 수 있잖아요. 영양소는 대부분 섬유질 안쪽 깊숙한 곳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섬유질은 빼고 즙만 마시는 거죠.”

경 대표가 10년간 다니던 한국수출입은행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로푸드 공부를 하러 간 건 2012년. 50대 아저씨들이나 토로할 법한 만성피로와 어깨 결림, 눈 앞 흐림 등의 증세로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 다녔지만, 건강검진 결과는 매번 ‘양호’였다. 도대체 내 몸의 문제가 무엇인가,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외국 서적들을 탐독하던 차에 마침내 탐침이 디톡스에 닿게 됐다.

“미국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안 좋은 식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찍 디톡스가 연구됐더라고요. 책에 나온 대로 일주일간 생식을 해봤죠. 결과는 정말 놀라웠어요. 아침이면 저절로 눈이 떠져 벌떡 일어나지고, 식곤증도 없어졌어요. 아버지 간병 때문에 병원에 살다시피 하면서 보니까 식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군요. 유학을 떠나게 된 결정적 계기였어요.”

생식 관련 학위과정이 없어 공공보건학을 전공으로 택해 뉴욕시립대에 진학한 경 대표는 틈틈이 비학위과정을 통해 디톡스 관련 공부를 한 후 지난해 서울 한남동에 디톡스 클래스 진행을 겸하는 주스바 에너지키친을 오픈했다. 신사동 지점에 이어 최근 개장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에도 입점했으며, ‘로푸드 다이어트’ ‘주말클렌즈’ 등의 책도 썼다.

경미니 에너지키친 대표가 당근을 착즙하고 있다. 통째로 가는 스무디와 달리 섬유질과 즙이 분리된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경미니 에너지키친 대표가 당근을 착즙하고 있다. 통째로 가는 스무디와 달리 섬유질과 즙이 분리된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 내 몸이 디톡스를 원할 때

착즙주스 열풍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니콜 리치나 셀마 헤이엑 같은 셀러브리티들이 착즙주스를 손에 들고 있는 파파라치 사진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착즙주스는 몸의 독소 배출을 돕는다고 해서 디톡스 주스로도 불린다. 요새는 라이프 스타일의 한 개념으로 주스 클렌즈라는 동사형으로 더 많이 사용한다. 일정기간 채소와 과일로 만든 주스만 마시면서 무절제하게 섭취했던 음식을 소화시키느라 지친 몸에 안식년과 같은 휴식을 준다는 의미다. 주스 클렌즈 기간 동안 몸 안 구석구석 쌓여 있던 노폐물들이 배출되면서 몸이 균형을 찾게 되고, 과도한 식욕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보통 일주일 동안 하루 여섯 병의 착즙주스만 마시는 프로그램이 권장되지만, 힘들 경우 3일만 해도 나쁘지 않다.

몸 안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디톡스는 사실 다이어트의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퉁퉁 부은 종아리, 더부룩한 뱃속과 불룩 나온 아랫배는 전형적인 체내 노폐물로 인한 현상들. 잦은 폭식, 탄수화물 중독 증세, 만성피로, 여드름 등 피부 트러블, 생리불순 등의 증상이 나타날 때도 내 몸이 디톡스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특히 부종에 효과가 좋아 성형수술 직후의 필수 코스가 됐다는 귀띔이다.

주스 클렌즈를 하기로 했다면 약 3일 전부터는 가공식품, 유제품, 동물성 식품, 카페인, 알코올을 제한하는 게 좋다. 3일 이상 주스 클렌즈를 할 경우에는 시작하기 전날 24시간 동안 단식을 해야 한다. 단식이 힘들면 적어도 저녁 한 끼는 굶고 다음날 아침 속이 완전히 비었다는 느낌이 들 때 주스 클렌즈를 시작한다. 첫 날은 채식(비건) 식단으로 아침, 점심을 먹은 후 저녁에는 물 500㎖에 레몬 반 개의 즙을 섞은 레몬수를 마시고, 둘째 날은 아침과 점심에 레몬수만 마신 후 저녁부터 착즙주스를 2병 먹는다. 사흘째부터는 매일 6병의 착즙주스만 먹는다.

주스 클렌즈를 3, 4일쯤 하다보면 흔히 말하는 명현반응이 올 수 있다. 평소 불편했던 몸의 특정 부위 통증이나 증상이 일시적으로 더 심각해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비염이 있었다면 콧물이 줄줄 흐르거나 편두통이 있었다면 두통이 심해지는 식이다. 이는 몸이 노폐물을 배출해내는 치유과정의 일부로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 간혹 몸이 배출할 수 없는 초과 용량의 채소를 섭취함으로써 얼굴에 뾰루지가 대거 올라오거나 가려움증 등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때는 양을 줄이면 좋아진다. 미국에서는 그래서 디톡스와 관장을 동시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디톡스도 좋지만 채소와 과일 즙만 먹으면 영양불균형이 초래되지는 않을까. 경 대표는 “보통의 우리 식단이 불균형 면에서는 훨씬 심각할 것”이라며 “우리에게 부족한 영양분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같은 매크로뉴트리언트(macronutrient)가 아니라 비타민과 무기질 같은 마이크로뉴트리언트(micronutrient)”라고 말한다. “식물에도 단백질이 있고, 지방이 있어요. 채소와 과일을 통해 섭취하는 단백질로도 부족하지 않답니다.”

주스 클렌즈 주기는 자신의 몸에 맞게 스스로 정한다. ‘삼겹살 회식 등 과식한 다음날 하루는 꼭 디톡스를 하겠다’고 하는 것도 좋고, 하루 세 끼 중 한두 끼 정도는 주스로 영양을 채우는 것도 몸을 가볍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는 색깔에 신경 써서 보기 좋게 만들면 맛도 좋다고. “사과나 파인애플처럼 색깔이 약한 과일을 베이스로 한 후 한두 가지 채소를 첨가하면 좋아요. 빨강, 노랑, 초록, 보라, 주황 다섯 가지 색깔 중 비슷한 계열을 묶어서 만들면 실패하지 않죠.” 이게 예전 엄마들이 만들어주던 녹즙과 다른 점은 뭘까. “똑같아요. 냉커피냐 아이스 아메리카노냐의 차이인 거죠.(웃음)”

● 우리를 열광시켰던 주스들의 역사

착즙주스 이전에는 레몬디톡스가 있었다. 해독주스와 청혈주스도 있었다. 레몬디톡스는 하루 종일 2리터의 레몬수만 마셔야 하는 고통이, 해독주스는 채소의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삶은 후 가는 과정이 귀찮기 이를 데 없었다는 약점이 있었다. 양파까지 마구 넣어 갈아먹는 청혈주스는 피가 맑아질지는 모르겠으나 먹으면 구역질이 올라온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이 모든 고난의 역사를 배경으로 맛과 영양을 동시에 도모하는 착즙주스가 자리잡았다. ‘어, 의외로 맛있네’가 처음 주스를 먹어본 사람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다. 20여년 전 덴마크 다이어트 시절부터 주구장창 우리를 괴롭혔던 셀러리조차 케일, 시금치, 로메인, 오이, 사과, 레몬과 함께 착즙된 주스에서는 독특한 풍미를 남기는 후미(後味)로 그 위상이 높아진다.

착즙주스는 영양소 보존율을 높이기 위해 바로 짜서 바로 먹는 게 관건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스바들이 수공업 형태로 주스를 생산한다. 대량생산, 유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수공업적 생산구조는 재미있고 개성적인 상품들을 탄생시켰다. 각각의 메뉴, 각각의 라벨, 각각의 제품명, 모두에 독창성이 넘친다. 에너지키친바의 착즙주스들을 보자. 당근과 사과, 레몬이 들어간 주스는 캐롤라인의 이름을 따 '미스캐롯라인'이라고 지었다. 밀싹, 당근, 파인애플, 코코넛워터로 만든 주스는 ‘수요일 오후 3시 30분’, 비트와 생강, 자몽, 사과, 블루베리 비니거가 들어간 주스는 ‘진절머리’다. 가로수길의 주스바 ‘배드파머스’는 비트, 당근, 사과, 레몬 혼합주스를 ‘이토록 가벼운 오늘’, 셀러리 케일 시금치 등을 넣은 주스는 ‘살들아 잘 있거라’로 이름 지었다.

착즙주스는 섬유질과 즙을 분리했다는 점에서 섬유질로 걸죽한 스무디와 다르고, 수입 후 가열 과정에서 발생한 수분 손실을 물로 보충한 농축주스와도 다르다. 재료 무게의 절반도 채 주스로 안 나오니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트 진열대마저 잠식한 착즙주스는 소다와 농축주스 등 온갖 음료들이 죽을 쑤고 있는 음료 시장에서 유일하게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품목이다. 연간 성장률이 2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일산에 최근 개장해 핫 플레이스가 된 이마트타운 내 푸드코드 피코크키친에도 자체 브랜드를 단 프레스드 주스가 도열해 있으며, SSG 푸드마켓을 비롯한 백화점 식품매장에도 온갖 착즙주스가 즐비하다. 세상은 커피 대신 주스로 성큼성큼 이동하고 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경미니가 추천하는 착즙주스 레시피 4선

초보자도 성공할 수 있는 착즙주스 네 가지를 경미니 에너지키친 대표에게 추천 받았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맛이 없으면 소용 없다는 실용주의적 미각 철학을 가진 이답게, 그가 제시하는 레시피는 맛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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