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부터 매주 화요일‘기자, 심판이 되다’시리즈를 1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대한축구협회 3급 심판 자격을 가지고 있는 김형준 기자가 축구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한편,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명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아~ 대한민국, 또 애매한 판정에 졌어요. 상대가 아닌 심판에 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방송을 통해 축구를 즐겨 본 내겐 항상 불편했던 구석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 ‘심판 탓’이다. 주로 국가대표 경기, 그 중에서도 졌을 때 자주 나온 캐스터의 코멘트다.
어려서 애국심이 부족했던 탓인지, 은연중에 청개구리 심보가 발휘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때론 경기에 진 대표팀보다 심판 판정을 핑계로 대표팀을 감싸는 해설진에 더 큰 실망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명백한 오심에 진 경기도 물론 있었거니와 경기 흐름을 묘하게 바꾸는 편파 판정이 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가만히 되짚어보면 한국이 득을 본 경기도 꽤나 많았다. 더구나 해설진이 ‘왜 오심인지’설명하지 못한 채 ‘애매한 판정’이란 단어로 패배의 원인을 덮어놓고 심판에게 돌릴 때면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승복’이란 가치가 무너지는 느낌도 받았다.
켜켜이 쌓였던 불편함은 2006년 6월 열린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스위스전에서 절정에 달했다. 0-1로 뒤지던 후반 32분 터진 스위스 공격수 알렉산더 프라이의 골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이 경기 전까지 1승 1무로 스위스에 비기기만 해도 원정 첫 16강 진출이 확정적이었던 터라 승부에 쐐기가 된 이 골은 온 국민이 믿고 싶지 않은 골이기도 했다.
빠른 공격 전개 상황에서 골 문을 가른 프라이의 골 상황 때 부심은 기를 들어 오프사이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주심의 최종 판단은 ‘골’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주심의 휘슬에 앞서 올라간 부심의 기를 본 뒤 수비를 소홀히 했고, 그 뒤에 나온 골 상황을 인정하지 못한 채 격렬히 항의했다.
결정적 순간에 나온 복잡한 골 상황. 하지만 당시 지상파 방송 3사 해설진 모두 오심 여부와 그 근거를 명쾌하게 내놓은 곳은 없었다. 명장면은 MBC에서 나왔다. 이젠 현역 은퇴를 앞둔 차두리(34·당시 MBC 해설위원)의 “이건 사기입니다”라는 대회 최고의 어록을 내뱉었다. 사실 당시엔 가장 통쾌한 한마디였다. 나 역시 그랬다. 그 판정을 믿기 싫었고, 판정 근거는 몰라도 오심이라 우겨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결과는 0-2 패. 한국의 원정 첫 16강 도전은 거기서 끝났다. 하지만 이 때의 실패에 대한 찜찜함은 몇 날이 흘러도 가시지 않았다. 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선수들도 해설진도 그 상황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고 나 또한 그 궁금증을 해소할 방법을 쉽게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직접 답을 찾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한축구협회 심판강습회에 정식으로 등록해 교육을 받고 심판이 되어보기로 했다. 때마침 4일간의 이론교육과 필기시험, 하루의 체력테스트 일정으로 진행되는 2006 하계 신인심판 강습회가 8월부터 열렸다. 당시 신인심판은 3급 과정(현재는 4급 과정부터 시작)부터 시작, 합격시 중등부 공식경기 부심까지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만일 심판강습회에서도 판정에 대한 논란들을 만족스레 해소하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도 찾아보리라 다짐했다.
더 나아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체력테스트까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심판을 업으로 삼을 생각까진 없었으나 양성 과정을 체험하고 싶었고, 더 나아가 그라운드 위에서 누구에게도 응원 받지 못했던 존재인 심판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곧장 강습회에 등록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유난히 더웠던 그 해 여름, 가슴도 유난히 뜨거워졌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대한축구협회 3급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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