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증거인 내연남 진술 오락가락… 국민참여재판 15시간끝 무죄 선고
“배심원들 평결을 존중해 재판부도 무죄를 선고한다.”
22일 새벽 3시 10분,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 피고인 전모(45ㆍ여)씨는 형사합의30부(부장 이동근)의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마침내 그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다 법정 바닥에 엎드려 재판부에게 절을 한 채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전씨는 2013년 형법상 강간죄의 피해 대상이 남녀 모두를 포함한 ‘사람’으로 수정된 이후 여성 최초의 강간미수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인물이다. 구치소에서조차 따돌림을 받은 그가 15시간에 걸친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어렵게 억울함을 벗은 것이다.
이날 피고인석에 자리한 전씨는 키 151㎝ 몸무게 44㎏로 자그마한 체구였다. 이런 체구로 거구의 남성을 강간할 수 있느냐가 재판의 주요 쟁점이 됐다. 전씨는 2014년 8월 새벽, 불륜 사이인 유부남 A(51)씨가 이별을 요구하자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만든 후 강간을 시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전씨가 A씨 거부로 성관계에 실패하자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고 이에 A씨도 전씨를 폭행했다는 법 논리를 세웠다. 따라서 전씨가 A씨에게 수면제를 먹인 것은 성관계를 목적으로 한 것인 만큼 강간을 시도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씨 측은 수면제를 먹이고, 망치를 휘두른 점 등을 인정하면서도 강간 의도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전씨가 A씨와 함께 수면제가 든 홍삼액을 나눠 마신 정황을 근거로 들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전씨 혈흔 속 수면유도제 졸피뎀을 찾아 증거로 내놨다. 전씨는 또 정당방위 차원에서 A씨에게 망치를 휘둘렀다고 반박했다. A씨가 평소 전씨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가학적 성행위를 요구해왔으며, 사건 당일에는 자신의 아내 전화를 전씨가 받자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는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전씨가 A씨를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가족이 따로 없는 그녀에게는 버려진다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라고 변호인은 변론했다. 전씨의 어려운 성장과정을 들은 변호인단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결정적 반전은 재판의 유일한 직접 증거인 A씨 진술이 오락가락한 데서 이뤄졌다. A씨는 “전씨에게 망치로 맞고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면서도 “나에게 맞은 전씨의 피를 닦아줬다”는 등 일관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수면제 복용상태에서 기억했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인 진술도 배심원들에게 의문을 갖게 했다. 배심원들은 결국 이날 새벽 전씨에 대해 9명 전원 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고, 재판부 역시 평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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