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글리코사의 '바통도르'(위)와 롯데제과의 빼빼로 프리미어. 연합뉴스
롯데제과가 일본 제과업체 에자키글리코(글리코) 제품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는 판결이 나왔다. 수 년 전부터 '카피캣(Copy cat·모방꾼)' 정책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롯데제과는 다시 한 번 불명예를 안았다.
■ '바통도르' 디자인권 침해…韓 법원 글리코 손 들어
2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이태수)는 글리코가 롯데제과를 상대로 낸 디자인권 침해금지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앞서 글리코는 지난해 11월, 롯데제과의 '빼빼로 프리미어' 상자 디자인이 2012년 자사가 출시한 '바통도르'를 베꼈다며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로 두 제품의 상자는 정면 두 모서리에 S자 곡선이 들어간 직육면체로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앞면 흰 바탕색에 막대과자 이미지와 제품명이 표기된 점도 표절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글리코는 자사가 바통도르 상자의 디자인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롯데제과는 빼빼로 프리미어 제품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롯데제과는 해당 디자인은 글리코가 출원하기 전에 이미 존재했고 그대로 빌려 쓴 것에 불과하므로 디자인권 침해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롯데제과 빼빼로 프리미어는 글리코의 바통도르 출시 후 국내에 출시됐으므로 디자인을 침해한 것"이라며 "제품 형태 및 상자 면의 배색과 구성이 매우 유사해 글리코 제품을 모방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글리코와 롯데제과의 해당 제품은 동일한 형태의 과자 제품에 해당해 직접적 경쟁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롯데제과가 해당 제품을 제조·판매함으로써 글리코의 영업상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제과는 이번 판결로 해당 제품에 대한 생산 및 판매·수출이 전면 금지될 예정이다. 또 현재 본점에서 보관 중인 제품을 모두 폐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롯데제과 측은 "다른 해외업체들도 곡선 형태의 박스를 쓰고 있어 범용 디자인으로 판단했다"며 "현재 해당 제품은 소량 출시된 한정판으로 현재 생산되지 않고 있다. 판결에 대한 항소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를 맞아 롯데제과의 마케팅으로 보급된 빼빼로데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이번 판결은 롯데제과를 넘어 신동빈 회장이 이끄는 롯데그룹의 이미지 실추로 확산될 조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부 누리꾼은 "일본 기업이 경쟁사 제품을 베꼈다가 한국에서 망신만 당했다"는 댓글을 남기는 등 롯데그룹의 국적 정체성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 롯데제과 카피캣 역사는 '현재 진행형'
롯데제과의 베끼기 논란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70년대부터 다양한 모방 제품을 선보이며 카피캣의 원조로 불리고 있다.
앞서 롯데제과는 1978년, 오리온 '초코파이'의 유사 제품 '쵸코파이'를 출시하며 카피캣 논란에 불을 지폈다. 당시 오리온은 롯데제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롯데제과의 상표권을 인정했다.
이후에도 롯데제과는 베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리온이 중국 공략을 위해 초코파이의 포장지를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자 롯데제과도 유사한 디자인을 차용한 바 있다.
2008년에는 크라운제과와의 법정 다툼이 불거졌다. 문제는 롯데제과가 크라운제과의 '못말리는 신짱'과 비슷한 '크레용 신짱'을 출시하면서 제품명에 대한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법원은 크라운제과의 손을 들어줬고, 결국 롯데제과는 해당 제품의 이름을 '크레용 울트라짱'으로 바꿔 재출시했다.
뿐만 아니라 롯데제과는 최근 PB제품을 통해 인기 상품 베끼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PB제품은 'Private Brand goods'의 줄임말이다. 제조업체가 생산하고 유통업체 브랜드로 출시되는 제품을 일컫는다.
롯데제과는 그룹내 계열사인 롯데마트의 유통망을 이용해 경쟁사보다 저렴한 PB상품으로 매출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유통구조는 원조 제품을 출시한 경쟁사들과 더불어 중소 공급업체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PB제품에 주력하다보니 중소업체는 자체 브랜드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업계의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단순히 표절시비를 넘어 국내 제과업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참고 사례로 기억될 것"이라며 "지배 구조상 일본계 기업이라는 의견이 제기된 후 롯데 상품 불매운동이 진행중인 가운데 또 한 번 악재가 겹친 셈"이라고 말했다.
채성오기자 cs86@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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