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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과학자의 소신

입력
2015.08.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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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던 내 마음이 가장 크게 흔들렸던 건 고3 때인 1989년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부산에서 제일 많은 23명의 선생님이 전교조에 가입해 결국 세 분이 학교를 떠났다. 자신의 과학 이론이나 신념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정치나 이념의 경우는 다르지 않은가. 왜 이분들은 사랑하는 제자와 학교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했을까? 난 그때 처음으로 세상에는 과학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과학에 대한 신념을 지킨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정치적인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과학과 기술이 이미 일상에 깊이 침투해 버린 과학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21세기의 한국사회도 황우석 사태, 광우병 파동, 천안함 사건 등을 겪으며 전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과학자들의 입장 표명이 얼마나 민감한 정치적인 행위인지 절감하게 해 주었다.

정말 관성력 때문에 함정의 스크류가 그렇게 휘어지는지, 1번 어뢰 흡착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더 많은 과학자들이 활발하게 전문 소견을 내놓고 토론했더라면 천안함을 둘러싼 엄청난 혼란과 의혹을 금방 해소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를 포함해 주변의 대다수 과학자들은 정부와 다른 생각을 표명하는 데 큰 부담감을 느꼈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은 17세기를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만약 그 부담감을 이겨냈더라면 한국에서 과학자의 사회적 지위나 존경심이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사회 갈등 요소를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가장 합리적으로 해소했더라면 과학자들이 정말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존재로서 각인되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들곤 한다. 결국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조차 과학자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과학적 소신을 지킬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요즘 같은 한국 분위기라면 더욱 그러할 것 같다. 때로는 연구비나 직위를 잃을 수도 있고 그밖에 다양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21세기가 되어서도 감수해야 할 불이익이나 위험이 별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며칠 전 한 현직교수가 대학 민주화를 요구하며 목숨을 던졌다. 살아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텐데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아마도 그 분에게는 대학 민주화와 총장 직선제가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지키고 싶은 가치였을 것이다.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없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은 여전히 가슴 아프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제 더 이상 피를 먹지 않아도 자랄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은 오만이었을까? 이런 사회에서는 과학자도 자신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종필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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