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 등 현저히 감소 효과 불구 예산 쪼들려 리모델링 지지부진
추진 중인 곳 합쳐도 전체 14% 불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해 6월 유치장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했다. 쇠창살로 만들어진 유치장 외관을 강화 플라스틱인 폴리카보네이트와 전통 격자무늬 등을 혼합해 10㎜ 두께의 반투명 막으로 바꿨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유치장 재질만 교체했을 뿐인데 유치장 내 돌발사건이나 유치인들의 불만이 현저히 줄어든 것. 영등포서 관계자는 21일 “쇠로 만들어진 유치장은 누가 봐도 위압적 느낌이 강해 유치인의 긴장감을 부추기는 측면이 많았다”며 “유치장이 인권친화적으로 변화한 뒤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유치장 개선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낡은 시설과 자해, 유치인 간 폭력이 상존하는 유치장은 그간 경찰 인권침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12년 대구에서 특수절도 미수범이 경찰서 유치장 배식구를 통해 탈주한 사건을 계기로 전근대적인 유치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냉ㆍ난방시설 설치 ▦쇠창살 개선 ▦개방형 화장실 교체 등을 꾸준히 권고해 왔다.
이에 경찰은 2013년부터 전국 110개 경찰서 유치장을 대상으로 의욕적으로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영등포서처럼 유치장이 ‘쇠창살’에서 인권친화적 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은 11개에 불과하다. 올해 개선을 추진 중인 4곳을 합쳐도 전체의 14%밖에 되지 않는다. 이유는 막대한 비용 때문.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유치장 한 곳을 리모델링 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3억원 가량인데 비해 배정된 전체 예산은 연간 10억~20억원에 그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유치 환경 개선효과가 분명한데도 다른 사안에 밀려 매년 예산이 부족하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리모델링 작업이 지지부진한 사이 유치장 내 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인천의 한 경찰서 유치장에 수용된 A씨는 체포 사실에 불만을 품고 쇠 재질로 된 벽면 모서리에 머리를 들이받아 자해했다. 올해 1월 전북 군산의 한 경찰서 유치장에선 B씨가 유치장 내에 별도 설치된 개방형 화장실의 가리개(높이 1m)를 밟고 올라섰다가 그대로 떨어져 병원에 후송됐다. 두 곳 모두 예산 부족으로 개선사업 대상에서 제외된 유치장이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유치장은 형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의 신체의 자유를 잠시 제한하는 공간이지만 쇠창살의 위압적인 모습에 유치인 본인은 물론, 가족이 충격을 받는 경우가 많아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전국의 모든 경찰서 유치장을 바꾸려면 수백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사고발생 빈도 등 교체에 필요한 요소들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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