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미 수 차례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법조계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상태였다. 자리를 채운 판사들 사이로 긴장과 기대가 교차했다. 이윽고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검사들이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술을 받아놓은 조서가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습니까. 그런 검사의 수사기록은 던져버려야 합니다.”그의 발언이 끝나자 판사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2006년 9월19일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의 대전고ㆍ지법 방문 장면이다.
▦검찰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 대법원장은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그래도 공판중심주의 확립 소신을 접지는 않았다. 공판중심주의는 판사가 주도하는 재판 과정에 모든 증거를 올려놓은 뒤 여기서 형성된 심증만으로 사건 실체를 심판하는 것이다. 이 대법원장은 검찰이 범죄 혐의에 꿰어 맞춘 내용만으로 조서를 작성하는 관행을 꿰뚫고 있었다. 판사들에게 검찰 조서만 믿고 재판을 진행하다간 크게 그르칠 수 있으니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하라고 한 그의 일갈은 법원사에 획을 긋는 업적으로 남았다.
▦공판중심주의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오래 전 형사소송법이 정한 대원칙이다. 다만 여러 이유로 현실에 적용되지 못했는데, 이 대법원장이 빛을 보게 만들었다. 그의 강한 드라이브 덕분에 구술 심리가 많아지는 등 재판이 과거보다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작금의 사법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20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에서도 그 단초가 읽힌다. 전원합의체 판결문에 소수의견으로 기록된 대법관 5명의 다수의견에 대한 비판은 신랄했다.
▦소수의견은 공판중심주의에 터잡고 있다. 5명의 대법관들은 “어떤 수사(修辭)를 동원하였든 다수의견은 법정진술보다 검찰진술에 우월한 증명력을 인정하겠다는 것과 같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에서 금품 제공을 인정한 공여자 진술의 허점을 항소심이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서 금품 공여를 부인한 법정 진술을 배척한 것은 공판중심주의에 어긋나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소수의견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이번 판결로 인해 그나마 정착돼 가던 공판중심주의 재판이 다시 검찰 중심의 조서중심주의로 회귀하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검찰을 견제할 기관은 법원 밖에 없는데 말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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