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철제솥과 함께
日궁성 구조와 유사한 건물지도 확인
"왕궁 안인지 밖인지 추가 연구 필요"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백제시대 왕궁 부엌으로 보이는 건물터가 확인됐다. 삼국시대 왕궁 부엌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백제 궁성 축조형식이 일본에 전파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장랑형 건물지(長廊形 建物址)도 함께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20일 전북 익산시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 제26차 발굴조사 결과 백제 사비기 왕궁의 부엌(廚)터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배병선 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유적 서남편 일대에서 왕궁 부엌터로 추정되는 동서 6.8m, 남북 11.3m 규모의 건물터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武王ㆍ600~641년) 재위 시절 축조된 왕궁성으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989년부터 26년에 걸쳐 발굴 중이다.
건물지 내 길이 1.64m, 너비 1.38m, 깊이 0.44m의 타원형 구덩이에서 철제솥(철부ㆍ鐵釜) 2점, 어깨가 넓은 항아리(광견호ㆍ廣肩壺) 2점, 목이 짧고 아가리가 곧은 항아리(직구단경호ㆍ直口短頸壺) 1점, 목이 짧은 병(단경병ㆍ短頸甁) 2점 등 토기 5점과 숫돌 3점, 철제 가래날 등이 발견됐다. 구덩이 옆에 철제솥 1점, 불탄 흙과 검붉게 변한 벽체, 다량의 숯이 바닥면에 깔려 있는 지점 두 곳도 확인됐다. 전용호 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사는 “철제솥은 바닥에 원형 돌기가 달리고 어깨에 넓은 턱이 있고 아가리는 안쪽으로 살짝 휘어져 있다. 익산 미륵사지, 부여 부소산성, 광양 마로산성 등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이후의 철제솥과 유사해 고대 백제계 철제솥의 변화양상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은석 학예연구실장은 “삼국시대에는 왕궁의 부엌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서 “이번에 확인된 부엌 건물지의 위치와 내부 구조, 시설을 면밀히 분석하면 삼국시대 왕궁 부엌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서쪽 궁장(宮墻ㆍ궁궐을 둘러싼 담장)을 따라 길이 약 29.6m, 너비 약 4.5m인 남북으로 긴 형태의 장랑형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 특히 정면 10칸, 측면 1칸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방형 건물지와 부엌 건물지 등 여러 건물이 왕궁의 중심인 정전 서쪽에 일렬로 배치된 점은 일본 궁성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배 소장은 “이와 유사한 구조와 배치가 일본 오사카 나니와(難波)궁, 나라(奈良) 아스카(飛鳥)궁에서도 나타난다. 백제 궁성 축조형식이 일본에 전파되었음을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백제 왕궁 부엌터로 확정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순발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는 “해당 터가 왕궁 안인지 밖인지 확인되지 않은 데다, 반복적으로 불을 피웠다고 보기엔 벽체(壁體)가 얇다”고 말했다. 김낙중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역시 “신하가 임금을 기다리는 조당(朝堂) 북쪽에 화장실도 짓지 않는데, 부엌을 짓는 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또 취사와 관련되지 않은 가래날, 철기 등이 발굴된 것도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왕궁리 유적에서는 그동안 궁장, 대형 전각을 비롯한 각종 전각 터, 금·유리 도가니가 발견된 공방터 등이 확인됐으며 인장 기와, 연화문 수막새 등 중요 유물 1만여 점이 출토돼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익산=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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