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폭탄선언' 예측 빗나가
지난달 27일 오전 광주시청 정문 앞.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검은색 테이프로 ‘X자’표시를 한 흰 마스크를 쓴 채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피켓엔 ‘시장님! 선거법 위반의 진실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이 남성은 지난해 6ㆍ4지방선거를 앞두고 ‘윤장현 시장 만들기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를 만들어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 받고 지난 6월 12일 법정 구속된 선거브로커 이모(67)씨의 친형이었다. 당시 그는 “동생의 억울한 사연을 이제야 알았다. 내 동생은 선거브로커가 아니다”며 “8월 20일 열리는 항소심에서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이씨와 공범 관계에 있다는 의혹을 샀던 터라 당시 그의 발언을 놓고 시청 안팎에선 “이씨가 윤 시장과 공모한 사실을 털어놓는 폭탄선언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더구나 1심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윤 시장이 선대위 임원들과의 모임에 참석해 도와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윤 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할 만한 내용을 적시한 터라 이씨의 항소심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20일 오전 광주고법 형사1부(부장 서경환) 심리로 열린 이씨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에서 이씨의 ‘폭탄선언’은 없었다. 이씨는 예상을 뒤엎고 자신의 선거법 위반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재판전략을 들고 나왔다. 이날 이씨의 변호인은 재판장이 “(공소사실 중)윤장현을 위한 유사단체를 설립해 사전선거운동을 한 부분은 인정하는 거냐”고 묻자 “그 부분은 양형부당만을 다투겠다”고 밝혔다. 이씨가 선거브로커임을 시인한 셈이다.
이씨 측이 윤 시장을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작전’을 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법정에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자 이를 둘러싸고 여러 추측과 해석이 나왔다. 실제 시청 주변에선 “이씨의 입을 막기 위해 윤 시장 측이 이씨 측과 모종의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이씨 친형의 1인 시위는 윤 시장 측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전술이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도 그럴 게 이씨가 법정 구속된 직후 윤 시장에게 자신의 실형 선고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고 도와달라는 취지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이 같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더구나 윤 시장의 선거캠프 출신 인사가 검찰 수사 때부터 이씨를 줄곧 관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도 이 인사는 법정 주변에 나타나 이씨의 항소심 재판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안경호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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