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가다가 낯익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익히 아는 여자의 목소리.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으로 시작하는 오래된 동요. 잠깐 졸고 있었던 것도 같다. 이어폰은 끼고 있지 않았다. 차내에 라디오 방송이 흐르는 것도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승객은 적었다. 소리 내 노래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차창 밖으론 나른한 여름 낮 풍경. 무슨 조화일까. 소리는 계속 들렸다. 프로 가수가 아니라 언젠가 만난 적 있는, 그러나 막상 떠올리려 하니 정체가 묘연해지는 여인이 낮은 음조로 읊조리는 노래. 갑자기 명치가 아려왔다. 햇볕 짱짱한 차창 밖이 흐물흐물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먼 과거의 파도소리가 도심 한가운데를 푸근하게 적시고 있었다. 최근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떠올려봤다. 특별히 그립거나 마음 아리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했다. 누구일까.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건가’라는 자문도 뒤따랐다. 기억 속 어느 귀퉁이에서 유령처럼 떠돌며 보잘것없는 오늘을 새삼 돌이키게 하는, 홀연하지만 스산하지는 않은 환청. 소리가 분명해질수록 눈을 똑바로 떴다. 작은 섬의 그늘 같은 게 눈꺼풀 안쪽에 아른대고 있었다. 버스를 내렸다. 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액정을 봤다. 어머니였다. 불현듯 과거에서 소환되어 온 목소리의 주인을 알 것 같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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