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선 수십 갈래의 전선, 케이블이 괴롭히고
몸통엔 현수막 노끈이 휘감겨 껍질 벗겨져
대못을 박거나 쓰레기를 쌓아두기도
이 도시에서 가로수로 사는 건 재앙에 가까워
서울 남대문로의 한 빌딩 앞, 현수막에 연결된 질긴 노끈이 은행나무 기둥을 칭칭 감고 있다. 여러 개의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노끈은 나무를 흔들며 옥죈다. 거리를 걸어 보면 노끈이나 밧줄에 묶인 가로수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어찌나 단단히, 그리고 오랫동안 묶어두었던지 굵은 철사가 껍질 속을 우악스럽게 파고 들어간 나무도 흔하다. 작은 상처쯤 자연 치유되는 게 보통이지만 반복적인 스트레스로 약해진 나무는 그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가로수의 수난이 일상처럼 이어지고 있다. 사람은 습관적으로 무자비하고 관리는 부실하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와 태평로, 용산구 청파로 일대 가로수를 살펴 봤더니 이미 가뭄과 대기오염 등으로 누렇게 변한 채 사람에 의한 물리적 학대까지 받고 있었다. 빗자루를 걸어두기 위해, 또는 전선을 고정시키기 위해 서슴없이 대못을 박은 상인들에게 가로수는 생명이라기 보다 쓸모 있는 구조물에 불과해 보였다. 오토바이를 하루 종일 기대 세워 두거나 밀대 걸레 건조대로 쓰이는 가로수가 흔하고, 밑동 주위에 다양한 쓰레기가 쌓여가는 장면도 자연스럽다. 선심 쓰듯 처방한 가뭄대비 수목물주머니엔 가로수에 필요한 물 대신 쓰레기가 들어 차 있다. 이 정도면 이 도시에서 가로수로 산다는 건 재앙에 가깝다. 관리 주체 중 하나인 서울 중구청 관계자는 “수시로 점검해서 가로수 환경을 개선하려 해도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소형 점포와 노점이 밀집한 남대문시장과 숭례문 주변 보도의 경우 수십 갈래의 전선과 통신 케이블이 가로수를 괴롭히고 있다. 대부분 상가건물 옥상에서 시작해 가로수 가지를 짓누르거나 휘감으며 노점이나 가판대까지 이어진다. 가로수 기둥을 따라 아래로 늘어진 전원 콘센트들은 가로수뿐 아니라 행인의 안전까지도 위협한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상가로 공급된 전력을 옥외용 설비나 안전장치 없이 임의로 끌어와 사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며 “만약 빗물이 콘센트를 통해 스며들 경우 길바닥으로 전류가 흘러 감전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가로수는 공기정화와 온도조절 등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막상 도시로부터 제공받는 생육환경은 척박하기 그지 없다. 생육기반부터 가로 세로 깊이 각 1.5m 정도의 비좁은 박스형인데다 비료를 주지 않으니 항상 양분이 부족하다. 도로 변이라 자동차 매연에 그대로 노출되는데다 겨울이면 제설제인 염화칼슘 세례도 피할 수 없다. 염화칼슘은 양분과 수분 흡수를 막아 가로수의 생육에 치명적이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받는 스트레스도 가로수의 수명을 줄게 만든다. 곽정인 환경생태연구재단 센터장은 “수십만 주의 가로수를 공무원 몇몇이 관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 이라며 “일본과 같이 체계적인 매뉴얼을 바탕으로 위탁 관리를 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곽 센터장은 또 “과거에 비해 가로수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긴 했지만 아직도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수십 그루를 통째로 베어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실정”이라며 “혜택을 받은 만큼 가로수가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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