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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빈곤·부패… 문학·유머를 사랑했던 아프간 독립 96주년의 그늘

입력
2015.08.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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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실향민 정착촌의 아이들. 앰네스티 인터네셔널.
2010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실향민 정착촌의 아이들. 앰네스티 인터네셔널.

1919년 8월 19일 아프가니스탄이 독립했다. 19세기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해 친영파 왕조를 세운 이래 두 나라는 크게 세 차례 전쟁을 벌였다. 전쟁은 왕조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질 때마다 영국의 침공으로 시작됐다. 19년 독립과 아마눌라 왕조의 수립은 제3차 전쟁의 성과였다.

아마눌라는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버금가는 세속 개혁 군주였다. 20년대 이미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규정한 헌법을 제정했고, 무슬림 전통의 여성 베일을 폐지하고 남녀공학 학교를 열었다. 소외된 부족과 종교 지도자들이 29년 쿠데타를 일으켜 아마눌라의 개혁정치는 잠시 멈추기도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70년대 중반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성장해갔다.

아프가니스탄의 북쪽에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냉전기 소비에트가 포진해 있다. 북동쪽은 중화인민공화국, 남동쪽은 힌두쿠시 산맥 너머의 파키스탄, 서쪽은 이란이다. 유럽과 소비에트의 사이에 서서 인도와 중국의 긴장을 완충해야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를 견제하고 세력을 과시하는 주무대였고, 수니파가 다수(85%)여서 탈레반 집권 이후 시아파의 이란과 날카로운 긴장관계에 놓이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이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고, 전후 냉전기간 동안 어느 진영과도 동맹을 맺지 않은(못한) 까닭이 그러했다. 국제사회에서 약소국의 중립은 대개 자존심 세워 웅크렸다는 의미다.

위태로운 균형이 무너진 것은 70년대 중반부터였다. 거듭된 정변과 권력 교체 배후에는 물론 냉전의 주역 미소가 있었다. 78년 집권한 친소 인민민주당 정부는 신앙의 자유와 토지개혁, 여성 등 인권 신장과 계몽 교육 정책을 폈다. 이슬람 율법을 중시하던 보수 진영의 불만을 부추긴 것은 미국(지미 카터 행정부)이었다. 무자헤딘 지원- 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레이건 행정부의 반군 지원- 89년 소련 철수와 내전- 96년 탈레반의 카불 장악- 2001년 9ㆍ11사태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2년 과도정부 출범과 04년 새 헌법 비준과 국가 재건.

오늘의 아프가니스탄은 반군 테러와 전투, 빈곤과 부패, 오랜 전쟁과 내전으로 빚어진 부족 갈등, 마약 등 산적한 문제와 싸우는 전장이다. 현지에는 아직 미군 약 1만 명이 주둔 중이다. 국제앰네스티 아프가니스탄 캠페이너 마야 파타키아(Maya Patakia)는 최근 ‘당신이 몰랐던 진짜 아프가니스탄’이란 글에서 음식 등 빼어난 문화와 스포츠, 문학(특히 시)에 대한 열정과 함께 그들의 “놀라운” 유머 감각을 언급했다. 웅크린 중립의 무너진 균형을 낯 구기지 않고 복원하려는 안간힘, 자존심으로 단련된 감각일 것이다. 오늘이 그들의 독립기념일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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