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 중동 갈등 열쇠이자 걸림돌
소수민족 전락하며 차별·박해받아
쿠르드 출신 IS대원 폭탄 테러
해묵은 터키·쿠르드 갈등 재점화
미국의 '쿠르드 딜레마'
지난달 20일 시리아 접경지역의 터키 도시 수룩에서는 쿠르드 출신 이슬람국가(IS) 조직원에 의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이 공격으로 인해 30여명 가량이 죽고 100여명 정도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폭탄테러 사건은 오늘날 빈발하는 테러공격 이면에 역사의 실타래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또 한동안 잊혀졌던, 30년도 더 된 해묵은 쿠르드족과 터키의 갈등이 알카에다와 IS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즘과 엮이면서 중동지역 안보 현안의 전면에 재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복잡하게 뒤엉킨 중동정세의 심연에는 늘 쿠르드 문제가 존재한다. 쿠르드 딜레마는 중동갈등 해결을 위한 중요한 열쇠이자 동시에 걸림돌이다. 쿠르드 민족은 아랍, 터키, 페르시아 민족과 함께 중동의 주요 민족 가운데 하나이다. 이 가운데 쿠르드 민족만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붕괴 이후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쿠르드 민족은 공중분해 되어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그리고 아르메니아에 분리 편입되었다. 이 때문에 쿠르드 인들은 해당 국가들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게 됐고 오랜 동안 해당국 권위주의 정권의 차별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터키는 쿠르드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수십 년 동안 터키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란 역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비시아파에 대한 차별과 박해를 지속해오고 있으며 수니파인 쿠르드인들 역시 그 대상이 되어오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사담 후세인 정권에 의해 차별과 박해, 그리고 화학무기를 이용한 인종청소 등의 표적이 됐다가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미국과 서방의 도움으로 쿠르드 지방 자치정부를 구성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자국 내 쿠르드인들에게 국적조차 부여하지 않아, 시리아계 쿠르드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유령인구로 존속해오고 있다가 시리아 내전 이후에 주요한 반정부 무장 세력으로 그 존재를 드러냈다.
문제는 쿠르드 민족 자체가 분열되어 있으며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우선 터키계 쿠르드는 크게 PYD(인민연맹당)/PKK(쿠르드노동자당)와 해다-파(Huda-Par)/헤즈불라(레바논 시아파 조직과는 다른 그룹이다)그룹들로 나뉘어져 있다. 전자는 세속적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터키 남동부 쿠르드 지역에 분리독립국가 또는 적어도 자치정부를 수립할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터키정부와 IS 양자 모두를 상대로 테러전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 후자는 쿠르드 내 이슬람주의자들을 대표한다. 이들은 IS를 지지하며 PKK를 포함한 세속적 민족주의 쿠르드 세력들과 터키정부에 모두 적대적이다. 현재까지 수천명의 쿠르드 인들이 PKK 등의 세속적 민족주의 그룹에 가담했으며 약 600명 정도의 쿠르드 이슬람주의자들이 IS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설명한 수룩 폭탄테러의 주모자는 이슬람주의계열의 쿠르드인 IS 조직원이었다.
한편 이라크계 쿠르드와 시리아계 쿠르드는 각각 해당 지역에서의 분리독립국가 또는 자치정부를 목표로 한다. 이라크 쿠르드의 자치정부와 쿠르드 페쉬메르가(Peshmerga) 무장 세력은 이라크 역내에서의 대 IS 전쟁의 핵심전투 세력이다. 시리아 쿠르드의 PYD(민주연맹당)와 YPG(인민수비대)는 시리아 내전의 주요한 무장세력이며 터키와 시리아 국경 지역의 상당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쿠르드 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대 IS 전쟁에서 서로 공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과 터키계 PKK와의 관계는 복잡하다. 시리아 쿠르드 세력은 PKK와 긴밀한 연대를 맺고 있는 반면 이라크 쿠르드 지역정부는 터키 정부와 협조적이며 오히려 터키의 이라크 지역 내 PKK 거점에 대한 공습과 소탕을 방관하거나 은밀히 지원한다. 이는 이라크 쿠르드 지방정부의 원유가 터키를 통해 국제시장에 판매되는 것을 비롯해 적대 국가들과 정치세력에 둘러싸인 탓에 터키와의 경제적인 유대가 없이는 지역경제의 생존이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터키계 PKK와는 전통적으로 정치적인 경쟁적인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 것도 배경이다.
쿠르드 문제에 직면한 터키 정부의 입장은 복잡하다. 이는 쿠르드 문제가 터키의 전통적 국가 이해관계, 그리고 현 대통령인 에르도안 정부의 국내정치적 상황과 시리아, 미국, IS 등 관련 국가 및 정치세력과 연관된 터키의 국제정치적 이해와 밀접히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IS가 주도한 수룩 폭탄테러를 기점으로 8월 9일 터키 경찰에 대한 PKK의 무장테러에 이르기까지 터키와 쿠르드, 그리고 IS, 시리아, 미국 간에 급박한 정세변화가 있었다. 터키는 수룩 테러를 계기로 IS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오랜 골칫거리인 PKK 테러세력을 함께 제거하려고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 PKK 거점에 대한 공습을 시도했다. 이와 동시에 터키 국내의 쿠르드 계열 반정부 세력과 극좌 그룹을 IS와 패키지로 묶어 소탕하려고 한다. 반면 PKK는 이에 맞서 지난 2년간의 정전협정을 깨고 터키에 대한 테러공격을 재개했다. 한편 터키는 미국에 인시르릭(Incirlik) 공군기지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되면 공습과 작전을 위한 비행거리가 상당히 짧아져 작전 효과를 극대화하고 소모비용을 낮출 수 있어 미군과 나토군은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 IS 소탕에 상당한 전술적 이점을 갖게 된다.
하지만 미국의 딜레마는 터키의 협조를 얻어내는 대가로 쿠르드의 희생을 용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에서 미국의 대 IS 전쟁에서 가장 믿을만하고 위력적인 무장 세력은 YPG와 같은 쿠르드 무장세력 이었다. 이들은 PKK와 긴밀한 연대를 맺고 있다. 터키는 PKK 뿐만 아니라 YPG 역시 자국에 매우 위협적인 세력으로 간주한다. 터키는 남부국경지역에 쿠르드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절대로 용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터키 총선에서 집권당인 이슬람 성향의 AKP(정의개발당)와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MHP(민족운동당) 연대가 의회의 5분의 3을 장악함으로서 에르도안 정부가 더욱 강경보수화 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터키는 미국과 나토의 대 IS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기회로 PKK와 쿠르드 무장 세력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터키에게는 IS보다 쿠르드 무장세력 또는 PKK가 훨씬 더 중요한 위협세력이다. 터키는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세력과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터키가 알 카에다 계열의 아흐라르 알 샴(Ahrar al-Sham)과 자밧 알 누스라(Jabhat al-Nusra)등을 지원해왔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터키는 심지어 IS와도 고위급 수준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IS의 인력채용과 석유밀거래, 유물 밀거래, 자금세탁 등이 터키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방조하는 대가로 IS는 터키 내 테러공격을 자제한다. 관광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6%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족과 종교분파, 정치세력들이 존재하는 터키 국내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은 터키를 IS 테러 공격으로부터 매우 취약하게 만든다. 따라서 터키로 볼 때는 IS 테러가 터키 내부로 번지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편 IS와 시리아 반군단체 아흐라르 알 샴, 그리고 알 카에다 시리아 지부 격인 알 누스라 등은 터키의 오랜 숙적인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 PKK, 그리고 다른 쿠르드 세력들을 제거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터키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미국은 쿠르드 세력을 포기할 수도 지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터키의 지원을 얻기 위해 쿠르드를 포기할 경우 동맹을 배신한 윤리적 상처와 효과적인 지상 전력의 손실이라는 전술적 출혈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터키의 적극적인 대테러 전쟁 가담은 미국과 나토에게는 IS의 궁극적 소탕을 이끌어 내는데 매우 결정적인 국면전환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 속에서 터키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윤민우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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