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캠벨이 쓴 '세계의 도서관'
건축가 강예린·이치훈씨 부부의 ‘도서관 산책자’(반비)에는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재미있는 비유가 등장한다. 움베르토 에코에 따르면 이 마을에선 노인이 죽었을 때 “도서관에 불이 났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노인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지혜의 방대한 양을 도서관에 빗댄 것으로, 고인을 기리고 그의 삶을 높이는 방법 중 상당히 세련된 것이라 하겠다.
종이책 멸종이 기정사실이 된 요즘, 도서관의 미래 역시 중요한 관심사다. 책이 사라지면 도서관은 어떻게 될까. 도서관이 단순히 책 보관 장소가 아닌, 인류의 지혜가 응축된 곳이라 할 때 미래의 도서관을 그리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가늠하는 일이기도 하다.
새롭게 발간된 제임스 W P 캠벨의 ‘세계의 도서관’(사회평론)은 전세계 도서관 건축물의 발전사를 다룬 최초의 책이다. 건축사학자 캠벨은 직접 21개국, 82개 도서관을 방문해 이 책을 썼다. 저명한 사진작가 윌 프라이스가 동행해 사진을 찍었다. 고대 최초의 도서관부터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사라진 도서관들, 중세 시대의 수도원 도서관들, 로코코 시대의 화려하고 호사스런 도서관, 그리고 현대 각국의 상징이 된 도서관까지, 도서관 건축물이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풍부한 글과 300여장의 도판을 통해 보여준다.
오늘날 도서관의 원형이 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시국가 에블라의 궁전에서 발견된 문서보관소다. 기원전 2300년에서 2250년 사이 침략자들의 방화로 파괴된 이곳은 가로 3.5m, 세로 4m의 장방형 공간 네 벽면에 빼곡히 서가가 세워진 형태로 오늘날의 도서관 서가와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불타서 무너진 목재 서가 주변에는 1만5,000여개의 점토서판 파편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중세의 도서관 중에는 사슬 도서관이라는 것이 있다. 소장된 책들을 모두 사슬로 책상에 묶어두는 도서관으로, 주렁주렁 달린 사슬의 용도는 말할 것도 없이 도난 방지다. 양피지에 필사한 책은 지금의 책의 가치와는 비교도 안 되게 높은 것이라,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조차 절도의 유혹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사슬은 이를 막아주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였던 셈이다.
도서관의 또 하나 중요한 역할은 과시다. 도서관 건축에 돈을 댄 자 혹은 도서관이 위치한 지역의 뛰어난 정신성을 알리는 데 그만큼 훌륭한 수단도 없는 것이다. 때문에 장서 수집의 연륜이 부족한 일부 도서관들은 어떻게든 이를 은폐하려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1742년 지어진 오스트리아 알텐부르크 수도원의 도서관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한 벽화와 조각으로 열람객의 시선을 교란시켰고, 슈센리트 수도원 도서관은 책장의 여닫이문에 가짜 책이 그려진 천을 덮어 놓기도 했다.
도서관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19세기, 유명 건축가들의 재량이 돋보이는 20세기를 거쳐 금세기의 도서관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큰 변화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인터넷과 전자책의 대중화, 경제 위기와 공공지출 삭감은 도서관의 종말을 예견하지만, 저자는 2000년대에 지어진 도서관 건축물을 돌아본 뒤 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인류는 “읽고 생각하고 꿈꾸며 지식을 향유할 공간을 놀라우리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창조”해왔으며 이 욕망이 지속되는 한 도서관도 영원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 공간에 책이 놓일지, 그 공간이 계속 도서관이라고 불릴지는 시간만이 알 일이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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