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김지섭] 올 시즌 이재원(27) 없는 SK 타선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간판 타자 최정은 잇단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고, 외국인 타자 앤드류 브라운은 겉으로 드러난 성적에 비해 영양가가 떨어진다. 박정권이 그나마 후반기에 살아나고 있지만 시즌 중반까지 주춤했다. 중심 타자 중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킨 이는 이재원이 유일하다.
이재원의 진짜 가치는 브라운과 비교할 때 잘 나타난다. 브라운은 이재원보다 13개 많은 24홈런을 쳤다. 그런데 타점은 60개에 불과하다. 반면 이재원은 86개로 팀 내 최다 타점을 기록 중이다. 득점권 타율은 더욱 차이가 난다. 이재원은 0.370에 달하는 반면 브라운은 0.204에 그쳤다. 한 마디로 이재원은 '찬스의 사나이'다.
득점권에 강한 그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온 트라우마를 이겨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재원은 이번 시즌 최대 위기를 6월5일 잠실 LG전에서 맞았다. 당시 2-2로 맞선 연장 10회초 2사 1ㆍ2루에서 절호의 기회를 잡았지만 LG 마무리 봉중근을 상대로 중견수 뜬 공으로 잡혔다. 그리고 연장 12회초 마지막 공격 때 2사 만루에서 또 타석에 섰다. 상대 투수는 임정우. 이재원은 힘 없이 투수 땅볼로 물러났다. 그리고 결국 팀은 연장 12회말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이재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그 때 너무 힘들었다. 평소에 찬스를 놓쳐도 이렇게 타격은 크지 않았는데 12회 타석에 들어서는데 온 몸이 떨렸다. 상대 투수가 더 긴장할 수 있는 상황인데 이처럼 얼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팀도 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숙소로 돌아간 후 지인을 통해 알아본 심리 치료사를 불러 상담을 했다. 심리 치료를 받고 나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돌이켜봤다.
심리 치료 후 이재원은 이튿날 적시타를 치며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찬스에 강한 비결도 해법을 찾았다. 그는 "찬스가 오면 당연히 더욱 집중하려고 한다. 가급적 타구를 멀리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타격을 하는데 이 부분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선수"라며 자신을 낮춘 '풀타임 2년차' 이재원은 경기 전 자기만의 루틴도 만들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이 "시즌을 치르는 자신만의 루틴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이재원은 경기 전 20분간 라커룸 한 쪽에서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그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됐을 때 손아섭(롯데)에게 체력 관리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며 "그 때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20분 정도 누워서 휴식을 취한다'고 알려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섭이도 경기 전에 눈을 감고 명상을 해 효과를 봤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도 의자와 라커룸 빈 공간을 활용해 명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SK 이재원.
김지섭 기자 onio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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