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13일 오전 4시 서울 강남구 역삼역 사거리. 신호대기 중이던 박모(37)씨의 시가 3억6,000만원대 페라리를 뒤에 있던 시가 3억원대 벤틀리 차량이 별안간 들이 받았다. 이 충격으로 페라리 앞에서 대기 중이던 김모(45)씨의 택시도 2차 추돌 피해를 당했다.
조사결과 벤틀리 주인인 이모(28ㆍ여)와 박씨는 부부 사이로 사고 당시 부인 이씨는 면허취소 수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115%의 만취 상태였다. 부부는 경찰에서 “운전미숙으로 발생한 단순 교통사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목격자 진술과 통화내역 등을 근거로 수사를 이어간 경찰은 미심쩍은 구석을 발견했다. 남편 박씨가 연쇄추돌 사고를 당한 택시기사 김씨에게 사고 당일 과다한 합의금을 지급한 것. 경찰이 이를 집중 추궁하자 의외의 사실이 하나 둘 밝혀졌다. 부부의 주장과 달리 사고는 박씨의 외도를 의심하던 이씨가 술에 취해 고의로 남편 차량에 돌진한 것이었다.
더 놀라운 점은 사고 처리 과정에서 부부싸움으로 인한 고의사고임을 눈치챈 택시기사 김씨의 행태였다. 그는 경찰에 알리겠다고 박씨 부부를 협박해 차량 수리비 500만원 등 총 2,700만원을 뜯어냈다. 그는 과실이 아닌 고의사고로 드러날 경우 형사처벌이 따르고, 보험혜택도 받기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박씨 부부 입장에서도 두 외제차의 수리비 견적이 페라리 3억원, 벤틀리 3,000만원으로 나와 보상을 받으려면 김씨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박씨 부부를 협박한 혐의(공갈)로 택시기사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6일 밝혔다. 부인 이씨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관계자는 “불리한 상황에 놓인 사고차량 운전자에게 사고 축소 등을 대가로 금품을 강요하는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중고 수입차를 매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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