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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세습사회와 교육의 계급화

입력
2015.08.16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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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이 구설에 올랐다. 아버지와 딸의 동반 출연 때문이다. 때론 어머니와 아들, 요즈음 TV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광경이다. 사람들은 ‘잘 나가는’ 아버지 어머니를 문제 삼는다. 그들이 딸 아들과 함께 방송에 등장하는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는 거다. 유명인들이 왜 하필 자식들과 함께! 당사자들은 황당해할지 모른다. 출연 제안을 거절하는 등 곡절을 거쳐 어렵게 성사된 일인데 대관절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런 눈으로 보면 ‘모자란’ 사람들의 시기심의 발로일 따름이다. 그러나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그렇게 치부할 수만은 없다. 우리 아이들의 삶의 기회에 관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이들의 삶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녀의 미래가 결정되는 이른바 ‘세습사회’가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고 있다.

시장 우위의 사회에서 기회의 균등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부모의 부가 별다른 제약 없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돈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자산까지도 거침없이 동원할 수 있는 게 성공한 부모의 자랑거리다. 그런 점에서 ‘잘 나가는’ 연예인 부모와 자녀의 동반 출연은 한정된 기회의 독점일 따름이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경험하는 부당한 일이 TV를 통해 안방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의 실체는 바로 세대 간 계급(층) 재생산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좌절감은 다름 아닌 자녀 교육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교육의 계급화가 심화된 현실 때문이다. 교육의 기회 균등은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고, 교육이 오히려 세습사회를 강화시키는 주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가난한 집 아이들의 학교가 확연히 구분되는 시대가 되었다. 자사고와 특목고가 부잣집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나머지 아이들은 일반고와 특성화고에 수용된다. 이렇게 학교 유형 간의 서열화는 물론 자사고나 특목고 내에서도 제2차 분화가 이루어질 정도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부모들 둔 아이들에게 유리한 게임의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부자 학교의 아이들은 당연히 대학입시에서도 발군이다. 높은 점수와 등수로 무장하여 가파르게 서열화 되어 있는 대학의 상층부를 독차지한다. 입시와 관련하여 특권적인 학교의 혜택에 더하여 사교육시장에서 거칠 것 없는 구매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노동시장에서 ‘괜찮은 일자리’ 역시 이들에게만 허락되어 있는 금단의 영역이다. 세대 간 계급 재생산의 메커니즘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우리 학교와 대학은 더 이상 “위대한 평등화 장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은 시장의 실패를 보정하는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부재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취학 기회의 보장 등 교육의 형식적 기회는 이미 활짝 열려 있다. 문제는 경제적 격차로 인한 교육의 불평등이다. 세습사회에서 교육의 실질적인 기회 균등이 한층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지난 20년간 정부는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는 교육정책을 펼쳐왔다. 역주행을 한 것이다.

‘광복 70주년’이라 야단법석이다. 들떠서 전시성 행사에 몰두할 게 아니라 우리 교육에서 ‘광복’의 정신은 무엇인지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해방 직후 우리 국민은 민족차별, 계급차별을 넘어서는 교육의 기회 균등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에 당시 제 정파들은 무상의무교육의 조속한 실현을 정강이나 정책에 담았다. 사회복지 시스템의 중핵으로서 공교육제도를 건설하겠다는 약속이었던 셈이다. 박근혜정부의 교육부에서 고교 무상교육, 반값 등록금 등 대통령 선거 공약이 표류하고 있는 현실을 겸허하게 되돌아볼 일이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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