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장자인 고 이맹희 CJ 명예회장은 모태인 삼성과 악연이 많은 비운의 인물이었다. 고인은 한때 이 선대 회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채 삼성그룹 총수로 떠올랐으나 이 선대 회장의 눈 밖에 나면서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40여년간 야인으로 떠돌았다.
고인이 1993년에 낸 책 ‘묻어둔 이야기’를 보면 1970년대 초부터 삼성 경영에서 밀려났고 1976년 가족회의 때 이건희 회장이 그룹 후계자로 결정됐다는 대목이 나온다. 1980년대 노태우나 정호용 등 TK계열 5공 실세 정치인들과 친분 때문에 더 심하게 견제 받았고 1987년 이 선대 회장 사망 후 이건희 회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5년간 해외를 떠돌았다는 내용을 기술했다.
결국 고인은 가슴에 맺힌 한을 2012년 2월 이건희 회장 상대로 7,100억원대 상속재산반환청구 소송을 내면서 표출했다. 이 선대 회장 사망 후 재산 정리 과정에서 제 3자 명의로 신탁된 재산을 이건희 회장이 단독 명의로 바꿨다며 삼성생명과 옛 에버랜드 주식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나중에 소송가액은 4조원대까지 치솟았다.
이후 고인 뿐 아니라 CJ도 삼성과 대립 관계에 놓였다. 삼성 직원이 고인의 아들인 이재현 CJ회장을 미행했다는 의혹이 터졌고, 이 선대 회장 추도식도 양 그룹이 나눠서 진행했다. 특히 고인과 이건희 회장은“건희가 어린애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당황했다”, “감히 나보고 건희라고 할 상대가 아니다, 날 쳐다보지도 못했던 양반”이라며 격렬한 공개 언쟁까지 벌였다.
결국 소송은 1,2심에서 패소한 고인이 지난해 2월 상고를 포기하며 일단락됐다. 이후 이재현 CJ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돼 건강이 나빠지는 등 악재가 잇따랐다. 이에 삼성도 이건희 회장이 지난해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와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법원에 이재현 CJ 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내면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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