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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꾼 배신의 기억… 피레네 산맥서 복수극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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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꾼 배신의 기억… 피레네 산맥서 복수극 펼쳐

입력
2015.08.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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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교육 이면에 숨겨진 차별… '친구' 단어 뒤에 깔린 수직성 폭로

귀욤 뮈소 동생 발렝탕 뮈소 첫 소개 "최고의 현대 추리작가" 호평받아

프랑스의 추리소설 작가 발렝탕 뮈소.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 기욤 뮈소의 동생으로, 활동 초기엔 일부러 다른 성을 사용해 동생임을 숨겼다. 느낌이있는책 제공
프랑스의 추리소설 작가 발렝탕 뮈소.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 기욤 뮈소의 동생으로, 활동 초기엔 일부러 다른 성을 사용해 동생임을 숨겼다. 느낌이있는책 제공

10년 만에 재회한 친구가 산행을 제안한다. 친구와 함께 했던 시기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당신 쪽에서 뭔가를 잘못했고 그게 결별의 사유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친구의 얼굴에선 일말의 원한도 찾아볼 수 없다. 생글생글 웃으며 화해의 산행을 제안하는 친구. 당신은 기쁜 마음으로 응한다.

발렝탕 뮈소의 ‘완벽한 계획’은 공포영화 도입부의 공식을 충실히 재현하며 시작한다. 깨지기 위해 마련된 평화, 애정보단 육욕이 지배하는 섹스, 부주의하게 튀어나오는 무시의 말들 속에서 독자들은 우정이란 단어가 어떻게 공포로 바뀌는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게 된다.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제라르 콜라르가 최고의 현대 추리작가라 칭찬한 발렝탕 뮈소는, 낯익은 성에서 눈치 챈 이들이 있겠지만 작가 기욤 뮈소의 동생이다. 2003년 ‘완전한 죽음’으로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기욤 뮈소는 국내에서도 ‘구해줘’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이야기 곳곳에 은근히 스릴러적 요소를 배치하는 형과 달리 동생은 본격 장르문학 작가다. 그는 먼저 유명해진 형의 후광에 영향 받을 것을 염려해 초기엔 발렝탕 푸르니에라는 이름으로 글을 썼다가 후에 제 이름을 되찾았다.

완벽한 계획 발렝탕 뮈소 지음·전미연 옮김 느낌이있는책 발행·432쪽·1만3,500원
완벽한 계획 발렝탕 뮈소 지음·전미연 옮김 느낌이있는책 발행·432쪽·1만3,500원

소설 속 로뮈알과 테오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일련의 사건 때문에 연락이 끊어졌다가 10여 년 후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친다. 늘 어둡고 자신감이 없던 로뮈알은 으리으리한 산장으로 테오를 초대하고 테오와 그의 애인, 또 다른 친구 다비드와 그의 애인, 이렇게 다섯 명은 험준하기로 유명한 피레네 산맥으로 사흘 일정의 산행을 떠난다.

처음부터 어긋났던 산행은 하나 둘 수상한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로뮈알은 지도를 깜빡하고 놓고 오고, 테오는 첫날부터 지독한 복통에 시달린다. 결국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위험한 빙하 지대를 지나다가 다비드와 그의 애인이 추락사하고 테오는 비로소 기억 속에서 밀어내다시피 했던 두 사람의 과거를 떠올린다.

빈민가 출신으로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로뮈알은 그곳에서 부잣집 아들 테오를 만난다. 약물과 술에 절은 상류층 망나니 테오는 로뮈알의 출신을 공개적으로 떠벌리며 조롱하지만 일련의 테스트 후에는 그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어른들이 태평하게 사용하는 ‘친구’란 얼마나 수직적인 단어인지. 테오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관계를 우정이라 착각하는 로뮈알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배신과 맞닥뜨린다.

작가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헤매는 다섯 사람과 고등학생인 테오와 로뮈알의 모습을 교차 편집한다. 독자로선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번갈아 보는 셈인데, 이런 치밀한 복수극에 응당 있어야 할 ‘산산조각 난 마음’이 설득력 있게 표현되지 않은 건 아쉬운 점이다. 맹수처럼 포효하는 피레네의 자연과 프랑스 엘리트 교육과정 이면의 계급차별을 묘사하는 데 힘을 다 빼버린 걸까(실제로 작가는 프랑스 엘리트 교육과정인 프레파 출신이다).

‘완벽한 계획’은 국내에 첫 소개된 발렝탕의 소설이다. 최고의 추리작가란 평판이 합당한지는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일단 기욤 뮈소의 동생이 어떤 소설을 쓰는지 알려주는 데 의의가 크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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