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 복지사업 정비 권고에 고심… "줬던 것을 뺏나" 노인들 반발 우려
“그 동안 주던 수당을 갑자기 중단하긴 어렵습니다.” “단체장의 선거 공약이어서 폐지는 불가능합니다.”
전국 지자체들이 고령의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장수(경로)수당’ 폐지문제를 놓고 고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11일 황교안 총리 주재로 사회보장위원회를 열어 지자체의 유사ㆍ중복 복지사업을 정비하기로 결정, 우선 각 지자체에 장수수당 폐지를 권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지자체는 수당 지급을 폐지했거나 폐지를 추진 중인 반면 적지 않은 지자체는 주민의 눈치를 보며 폐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복지’의 속성상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줬던 것을 뺏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강해서다.
민선 단체장 시대가 본격화한 10여년 전부터 전국 상당수 지자체는 경로효친 분위기 조성 등을 이유로 자체 조례를 제정, 고령의 주민들에게 장수수당을 주고 있다. 단체장 선거는 이를 확산시키는 촉매가 됐다.
경기도의 경우 31개 시ㆍ군 중 절반이 넘는 18개 시ㆍ군이 80세 또는 90세 이상 노인에게 월 2만~4만원의 장수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강원도는 2006년부터 2만원의 장수수당을 지급하고 있는데 태백시는 별도로 99세 이상 노인에게 ‘장수축하금 지급조례’에 따라 지난해부터 매년 30만원의 축하금을 주고 있다.
부산은 16개 구ㆍ군 가운데 기장군과 중구가 매월 3만원, 울산은 울주군과 남구, 북구가 월 2만~3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대전시는 2011년부터 90세 때 30만원, 100세 때 100만원의 장수축하금을 주고, 전북도는 14개 시ㆍ군 중 6곳이 장수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경북도는 23개 시ㆍ군 중 봉화군과 영주시 등 2곳, 충북은 11개 시ㆍ군 중 6개 시ㆍ군이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등 전국 지자체들이 비슷한 수준의 장수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권고의 합리성을 인정한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장수 수당 폐지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자체들이 선거를 의식하거나 인구 유치ㆍ유지를 이유로 복지수당을 무리하게 지급, 재정 악화를 불렀다는 지적에 대한 반성의 성격도 있다.
울산 울주군은 지난 5월 관련 조례 폐지안을 입법예고했다. 경기 성남시는 내년 1월부터 장수수당을 없애는 내용의 관련 조례 폐지안을 최근 입법예고하고, 24일까지 주민의견을 수렴해 10월 시의회 임시회에 폐지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경남 창원시도 장수수당의 신규지급 신청을 받지 않는 방법으로 이 제도를 자연스레 폐지하기로 했다. 경남 진주시와 남해군, 인천시, 전남 고흥군과 여수시, 영암군 등도 이미 장수수당을 폐지했거나 폐지할 예정이다.
반면 여전히 많은 지자체는 고민을 하고 있다. 경북 봉화군은 “군의원의 발의로 장수수당 조례가 생긴 만큼 의회의 의중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고, 전남도는 “장수수당을 받아온 노인들이 노령연금 지급 전부터 도입된 장수수당을 폐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항의를 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목상균기자 sgmok@hankookilb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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