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일본 홋카이도 도코로군에서 태어난 오구마 겐지씨는 태평양 전쟁 끝 무렵인 1944년 11월 징병된다. 이후 부산을 거쳐 중국 대륙으로 보내졌고, 이듬해 8월 소련군에 패전해 시베리아 수용소로 끌려가 3년간 강제노동을 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결핵에 걸려 고생했고, 밑바닥 생활을 하다 작은 상점을 열고 가족을 갖게 된다.
당시 태어난 일본인 상당수가 겪었을 이 남자의 평범함 삶이 구술기록과 당대 정치 경제 사회상을 담은 각종 자료와 함께 버무려져 책으로 나왔다. 겐지의 이야기를 듣고 분석한 이는 아들 에이지, ‘일본 시민운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게이오대 역사사회학과 교수다.
전후 겐지의 시각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그는 전쟁 당시를 회상하며 “나는 전쟁에 대해 지지도 반대도 아니었다. 생각할 능력도 정보도 없었다”고 털어놓지만, 전쟁 뒤에는 생각이 좀더 또렷해진다. “먹고 살기 바빠서 잘 몰랐지만, 도쿄 전범재판소에 천황이 기소되지 않은 것은 납득이 안 갔다.” 예순이 넘어 은퇴를 준비하면서는 지역 환경단체에 참여해 힘을 보태고 반전평화운동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같이 지냈던 조선인 오웅근의 전후보상재판이 벌어지자, 공동원고의 자격으로 그를 돕는 책 끝부분이다. “제가 이 재판의 원고가 된 것은 금전의 목적이 아닙니다. 오웅근의 소를 대변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이 재판을 통해 일본이 진정으로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제는 ‘살아서 돌아온 남자-어느 일본군의 전쟁과 전후’. 한국판 출간에 부친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아버지를 특별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인간은 누구라도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을 갖고 있다. 한 사람의 행동을 칭찬하기보다 그런 가능성을 많은 사람에게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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