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의 윤곽은 칼로 깎은 듯이 분명하지만 그 산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굴곡이 복잡하여 알 수가 없어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일에서도 몇 천 년 전 조상의 일일수록, 제 나라의 일이 아니고 남의 나라 일일수록 그 잘잘못을 판단하기가 쉽고, 제 나라에 가까워질수록 알기가 어렵다. 정말 자아에 이르면 정말 알기 어렵다. 이른바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은 어디서 잘못되느냐 하면 자아에서다. 행동하는 주체는 제가 되기 때문이다. 모순인 것 같으나 자아는 알 수 없는 것인데 그 자아야말로 꼭 알아야 한다.
반성은 모든 지식 행동의 총결산인 동시에 또 그 시작이다.…자기를 아는 사람, 우주 만물의 중심으로서의 자아, 그 자아의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로서의 나의 나를 깨우쳐 아는 사람이 어진 것 같이, 한민족도 제 역사, 그 중에서도 현대사를 바로 알아야 어진 민족, 어진 국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현대사야말로 바로 깨우쳐 알기가 어렵다.”(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군이 절치부심 독립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광복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갑자기 와버렸다. 그리고 70년. 한국 현대사는 유난히 굽이치는 강물처럼 적지 않은 변화와 반전과 혼돈 속에 흘러왔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가난은 여전하고, 문화는 풍성해도 정신은 빈한하다. 이해나 배려보다 아집과 독선이 앞서며, 이념으로 사회가 반분 되기 일쑤고, 몇 걸음 떼는 듯 하던 민주주의는 다시 뒷걸음질치는 기분이다.
아베의 담화에 눈 돌리기 전에 “우리는 과연 식민지에서 온전히 해방되었는가” “남의 부러움 살만한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고 되돌아볼 일이다. 지나온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광복 70년을 맞는 감회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해방의 감격을 경험한 세대에게 20세기 후반의 우리 역사는 놀라운 성공 이야기로 실감된다. 실패와 좌절로 중첩된 20세기 전반의 우리 역사와 좋은 대조가 되기 때문이다. 교육수준의 수직적 향상,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산업화, 세계에 유례없는 전국적 산림 녹화, 정치적ㆍ제도적 민주화의 성취에 우리는 민족적 긍지를 느낀다.…그러나 전후(戰後)의 쑥대밭에서 마련해낸 성공 이야기에는 불만이 따른다. 그 불만은 성공 이야기 이전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무관심한 세대일수록 상대적으로 강하다. 그 이전의 절망적인 가난과 무지, 비관론과 황량한 강산(江山)에 대한 일차적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만은 20세기 우리 역사를 ‘치욕과 실패의 역사’라고 송두리째 부정하는 해괴한 비역사적 관점을 낳기도 한다.
따라서 성공 이야기와 함께 아쉬운 실패의 유산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심각한 이념 대립이나 내부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과거의 실패로부터 배우는 일에 우리는 능란하지 못하다. 앞으로 30년이면 광복 100년이 된다. 그때까지 불만 없고 견고한 성공 이야기를 마련해야 하는 역사적 책무를 우리는 안고 있다.…관광 명소가 된 아우슈비츠의 한 건물 입구에는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마련이다”란 말이 적혀있다.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 곧 화해의 거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과 화해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것, 기억 없는 화해는 자기 기만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조선일보 8월 12일자 특별기고 ‘광복 70년, 역사적 성공과 그 불만’▶전문 보기)
“나이가 먹는 건지, 요즘은 자주 지금보다 더 고통 받았던 시절을 생각한다. 못 먹어서 배고팠던 어릴 때, 절대빈곤의 사슬을 끊으라는 사회적 명령을 늘 받았던 젊은 시절, 그리고 정치 문화적 억압을 향한 저항의 불길 같은 대오를 갈팡질팡 지나쳐 온 중년, 혹은 장년의 나날들. 우리처럼 한 세대에 걸쳐 질풍노도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어온 민족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어법적으로 말하자면, 그 고통, 그 변화, 그 굴곡들이 우리의 유일한 자원, 자기 갱신을 위한 에너지의 보고였다. 굴곡진 고비마다 정파와 세대와 지역을 넘어서서 최소한 ‘화염병’을 어디에 던져야 할는지 우리들은 그때 알고 있었고, 그래서 뜨겁게 공유했다. 대의를 믿는다며 ‘신문지 한 장’을 행운이라 여기던 사람들이 살았던 전설 같은 시대였다.
그래서 나는 또 묻는다. 그 시절에 비해 무엇이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가. ‘잊혀진 세월호’를 보라. 억압은 그 프로그램이 정교해져서 어디에 대고 무엇을 외칠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부자는 되었으나 독식의 체제가 깊어졌으니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고, 더불어 복 되자고 말은 많지만 우리는 더 뿔뿔이 흩어져 날로 지리멸렬, 고독할 뿐이지 않은가. 내가 정말 그리운 건 갱신을 향한 욕망들이 합쳐져 만드는 불길, 혹은 그것을 이끌어내는 마중 봉홧불 같은 것이다. 빌딩을 높이는 것, 인터넷 접속시간을 앞당기는 것, 경제지표의 상승을 발전이라고 예찬할 수는 없다.”(경향신문 2월 26일자 박범신의 논산일기 ‘뜨거웠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전문 보기)
“훌륭한 정치가는 한국의 국가목표로서 주권, 독립성, 영토 보전, 국가 안보(생존) 등의 “협의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더불어 성숙한 민주주의, 평화통일, 북한을 비롯한 모든 이웃국가들과의 선린관계를 포함하는 “광의의 국가이익”을 추구해야 한다.…이 순간 필자는 백범 김구 선생을 생각한다. 사실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파워라는 개념은 오래 전 김구 선생이 강조한 ‘아름다운 나라’와 유사하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文化)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민주정치, 민족통일, 자주외교를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공보수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우파민족주의자로서 끝까지 남북협상을 시도했다. 선생의 통일지향적 삶은 여전히 우리의 지표가 될 만하다.”(한국일보 8월 13일자 아침을 열며 ‘김구의 ‘아름다운 나라’를 위하여’▶전문 보기)
"대한민국을 창건할 때 꿈꾸었던 선진들의 이상에 접근해 보자. 대한민국 임시헌장(3조)은 평등사회를 선언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치균등, 경제균등, 교육균등을 규정한 삼균주의(三均主義)를 국가 건설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거창한 복지국가 이념도 중요하지만 균부(均富)의 이상은 지금도 심사숙고의 대상이다. 이는 실학시대 이익이 언급한 ‘손상익하(損上益下)’나 정약용이 제시한 ‘손부익빈(損富益貧)’의 원리를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부한 자들의 재산을 덜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보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에 회자되는 모 재벌의 ‘왕자의 난’은 선진들의 이 같은 이상 실현이 시급함을 강조하는 듯하다.한국이 이 정도로 성장했으면 분단을 핑계로 대지만 말고 나름대로의 세계사적 사명을 모색,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해방 70년을 맞아, 우선 우리에게 상처로만 남겨진 식민지 경험을 자산화하여 그걸 다른 민족을 돕는 데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이게 식민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길이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강대국의 세력권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이 있다. 동남아와 중동, 최근 보트피플을 양산하는 아프리카, 과거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로 상처받았던 이들에게 식민지 민중으로서 겪은 고통과 해방 경험을 나눠주자. 지난날 우리가 겪었던 고통과 흘렸던 눈물, 그것들을 씻겨주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자.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과 다문화가족들을 향해서도, 과거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 학대받았던 우리의 경험을 거울 삼아 그들을 돌보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해방 70년을 맞아 바로 이 땅에서 지구촌의 이상을 실현하는 길이다."(경향신문 8월 14일자 이만열 특별기고 '해방 70년, 감격과 반성 그리고 모색'▶전문 보기)
"눈물과 고통은 약한 자들의 것이다. 하지만 약한 자들의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천주교 박해 시절을 배경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서 알 수 있다시피 고요 역시 약한 자들의 것이다. 권력자들은 할 말이 많을 테니 침묵을 지키기가 어려울 테니까. 그런 점에서 소설 속 인간의 고통 앞에서 침묵하는 신 역시 약자들의 신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의 평화동 성당, 그리고 규슈와 마카오의 성당들에서 느낀 고요는 그 신의 것이리라.
그러나 평화 역시 그러하리라는 사실을 나는 동북아시아의 옛 성당들을 찾아다니다가 깨닫게 됐다. 강한 자들은 자기가 이길 것을 알기 때문에 말로는 평화를 외쳐도 실제로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원하는 대로 받을 것이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약한 자들은 권력 앞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존재이니 오직 평화를 바랄 뿐이다. 그들 역시 원하는 대로 받을 것이다. 평화는 원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니까. 광복 직후, 동네에 평화라는 이름을 붙인 이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한겨레신문 8월 13일자 김연수의 ‘소년이로다’ ‘원하는 대로 받을지어다, 평화를 바라는 약한 자들이여’▶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