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연초부터 모든 부서 동원
불법행위 행정처분 이례적 속도전
건설사 2200곳 무더기 족쇄 해제
"사면 멍석깔기 의도였나"의심
범죄 안밝혀진 기업까지 처벌 면제
"위법적 결정 아니냐" 비판 일기도
13일 정부가 단행한 대규모 특별사면 대상에는 건설분야에서 담합 등 각종 불법행위로 행정처분과 함께 입찰 참가자격 제한을 받은 업체 2,200여곳이 포함됐다. 그 동안 상당수 건설사들의 해외공사 수주 등에 발목을 잡아왔던 족쇄가 풀리면서 건설업계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도 많다. 향후 일정기간 동안 담합사실을 자진 신고한 업체까지 사면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하면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범죄에까지 사면을 해줬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고, 공정위가 최근 입찰담합 사건 처리에 속도를 내 온 것이 사면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짙어지고 있다.
‘사면 예고’ 논란
정부가 이날 건설분야에서 입찰 제한 등의 제재를 면해주기로 하는 사면에 포함시킨 대상은 ▦영업정지나 업무정지 처분 및 그로 인한 입찰참가 제한을 받은 업체 219개 ▦부정당업자 처분 및 그로 인한 입찰참가 제한 업체 381개 ▦과징금ㆍ과태료ㆍ벌금ㆍ시정명령ㆍ벌점ㆍ경고처분에 따른 입찰참가 제한 업체 1,407개 ▦업무정지 및 자격정지를 받은 건설기술자 192명 등이다.
특히 정부는 아직 입찰참가자격 제한이 시작되지 않았더라도 이날(13일)까지 입찰 담합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등 제재를 받은 업체도 사면 대상에 포함했다. 입찰담합을 한 건설사는 공정위에서 과징금이나 시정명령 등 행정처분을 받은 이후 공정위가 이를 조달청이나 개별 발주처에 통보하면 조달청 등에서 입찰참가 자격을 제한 받는다. 통상 공정위 통보부터 입찰참가자격 제한까지 짧게는 2주, 길게는 수개월이 걸린다. 최근 공정위 제재 처분을 받아 입찰참가자격 제한의 불이익을 아직 받지 않은 건설사들도 사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공정위가 입찰담합 사건 털어내기에 속도를 내 온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정위가 올해 3월 이후 제재한 입찰담합 사건만 해도 ▦새만금 방수제 건설공사(12개 업체) ▦보현산 다목적댐 건설공사(3개 업체) ▦농업용 저수지 둑 높이기 공구(8개업체) ▦환경공사(9개 업체) ▦천연가스 주배관ㆍ관리소 건설공사 (23개) ▦환경시설공사(11개 업체) ▦익산 일반 산업단지 폐수종말처리시설(7개 업체) ▦완주군 청사 및 행정타운 공사(17개 업체) 등 수십 건에 이른다. 특히 신속한 사건 처리를 위해 입찰담합 전담 부서인 입찰담합조사과 이외에도 국제카르텔과, 카르텔조사과 등 카르텔조사국 내 거의 모든 과가 입찰담합 사건 처리에 힘을 쏟아 왔다. 공정위는 “1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공정위가 건설시장 불확실성을 완화하기 위해 이미 인지한 입찰사건을 최대한 신속 처리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으로 사면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대부분 사면을 앞두고 마무리됐다는 점에서 의혹은 더욱 짙어지는 양상이다.
더 논란이 되는 것은 14일 이후 일정기간 동안 담합사실을 자진 신고한 업체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한 부분이다.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처분이 확정이 되지 않은 건설사나, 과거 시점에 담합 행위를 했지만 아직 당국에 적발되지 않은 건설사에도 사면의 문을 열어놓은 것으로 사실상 ‘사면 예고’에 다름없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성명을 내고 “사면법상 특별 사면은 이미 선고된 형의 집행이 면제되는 것이지, 현재 밝혀지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까지 처벌을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앞장서서 위법적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행정처분은 형사처벌과 달리 사면법에 사면 대상 등이 명확히 명시돼 있지 않아 미래 시점에 대한 사면도 법적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족쇄 풀린 건설업계
이번 특별사면으로 건설업계는 숨통이 확 트였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입찰담합으로 입찰참가가 제한된 업체는 78곳. 이 가운데 시공능력평가 30위 내 업체가 26곳, 100위 내 업체가 53곳이다. 물론 이중 대다수 업체들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실제 공공공사 입찰 제한을 받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건설업체들이 공공부문에서 수주하는 물량이 전체 수주 물량의 3분의 1이 훨씬 넘는다는 점(37.9%)을 감안할 때 향후 그 부담이 상당할 거란 우려가 많았다.
특히 해외수주에는 당장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건설사들이 입찰참가제한 처분을 받은 것이 해외건설시장에서 약점으로 작용해 외국업체와 수주 경쟁에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업계에선 “과징금 부과나 인신 구속 등의 제재를 받는데도 입찰참여 제한까지 부과되면 건설사의 영업을 중단하라는 것 아니냐”며 반발해왔다.
한편 건설업계와 더불어 공공사업에 참여했다가 중간에 계약을 포기해 일정 기간 동안 입찰참가 제한을 받아온 소프트웨어 업체 100곳도 이번에 사면 혜택을 받았다. 정부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업체가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점과,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는 창조경제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감안했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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