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조의 여왕·넝쿨당… 히트 제조기
'별그대' 中서 최고 한국 드라마로
'대장금' 이후 10년 만에 신한류
LA서 열린 K-드라마 세션에도
"박작가 보자" 팬 300여명 몰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주최로 개최된 ‘KCON 2015 USA’의 마지막 날이었다. 대미는 SBS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의 박지은(40) 작가 몫이었다. 이날 박 작가는 ‘올 댓 K-드라마’ 세션에 참석해 300여명의 한류 팬들과 만나 2시간 가량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별그대’의 사랑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했느냐?” “‘별그대’의 시즌2는 제작되느냐?” “KBS2 ‘프로듀사’는 만족스러웠나?” 등 한국 드라마를 꿰고 있는 현지 팬들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박 작가는 당황한 기색 없이 성심 성의껏 답했다. 이날의 질문공세는 박 작가의 국제적 위상을 가늠하게 했다. ‘별그대’로 ‘대장금’ 이후 10년 만에 중국에 한류 열풍을 제대로 불러일으킨 그는 한국일보가 선정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영향력 인물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신한류 이끈 선봉장
“동시통역기를 200개만 준비했는데 한류 팬이 300명 넘게 몰려서 박지은 작가의 저력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올 댓 K-드라마’ 세션을 진행한 김일중 콘진원 미국사무소장에 따르면 미국에서 영어자막이 나오는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해 한국 드라마를 보는 현지인(한국의 교포나 이민자를 제외하고)은 최소 2,000만명 이상이다. 김 소장은 “한국 드라마에 대한 비평사이트까지 있어 드라마를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별그대’는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과 워싱턴포스트 등에 보도되면서 서구 언론에서도 주목 받는 드라마였다.
지난해 중국에서의 인기만 따져도 ‘별그대’의 위력은 대단했다. 지난해 4월 중국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는 ‘별그대’가 한국 드라마 최초로 20억뷰를 돌파했다며 김수현에게 ‘한국드라마 최고 시청률상’을 전달할 정도였다.
‘별그대’의 성공이 예견된 건 아니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로 중국 내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는 전지현이 출연했다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별그대’의 판권료는 회당 2만 달러(한화 약 2,300만원)로 21부작에 총 4억8,000여만원이었다. 한국드라마 판권료가 보통 1만 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인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대우였으나 성공을 예감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드라마가 인터넷을 통해 방영되자마자 중국의 반응은 뜨거웠다.
국내외 언론들은 “‘대장금’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신(新)한류”라며 앞다퉈 크게 보도했고, 김수현 전지현은 중국 내 톱스타로 발돋움하며 중국 기업의 주요 광고모델로까지 됐다. 전지현이 ‘별그대’에서 착용한 명품 의상과 액세서리, 화장품은 중국에서도 초고속으로 팔렸고, 김수현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20여 개의 광고계약 체결과 60여건의 행사 초대 등으로 중국에서 3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현은 ‘별그대’ 방영 이후 광고 몸값이 1,000만 위안(한화 약 16억원)으로 이전에 비해 2,3배 이상 뛰어 오르기도 했다.
박 작가의 차기작 역시 주목 받았다. 지난 6월 종영한 KBS2 ‘프로듀사’는 김수현과 또다시 조우하면서 중국 시장을 술렁이게 했다. 1년 전 회당 2만 달러에 불과했던 판권료가 20만 달러(약 2억3,000만원)로 10배 이상 올랐다. ‘프로듀사’(12부작)는 총 27억원에 가까운 판권료를 챙겼고, 국내 광고수익만 40억원에 달하는 수익으로 ‘박 작가 전성시대’를 새삼 확인시켰다. 방송 외주제작사 로고스필름의 유홍구 본부장은 “박 작가는 ‘별그대’로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며 “그녀가 지금까지 집필한 작품은 5편에 불과하지만 앞으로의 작품은 더욱 기대할만하다”고 말했다.
▦방송의 영역 없앤 ‘방송 통(通)’
방송 전문가들은 ‘별그대’가 중국의 시청자를 사로 잡은 이유로 박 작가 특유의 코믹한 대사와 등장인물의 세심한 묘사를 꼽는다. ‘별그대’의 톱스타 천송이가 느닷없이 “천송이가 노래한다 홍~홍~홍”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 조선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온 외계인 도민준이 “내 인생의 책은 구운몽이야”라고 말하는 위트 있는 대사가 시청자의 눈과 귀를 바로 자극한다. 캐릭터를 드러내 대사 한 줄 한 줄은 박 작가의 장기다.
국문학(전남대)을 전공한 박 작가는 1997년 구성작가로 방송 일을 시작했다. 예능프로그램(KBS2 ‘시사터치 코미디파일’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MBC ‘코미디하우스’)과 시트콤(KBS2 ‘멋진 친구들’ ‘달래네 집’ ‘웃는 얼굴로 돌아오라’)을 거쳐 교양프로그램(KBS1 ‘역사스페셜’) 작업까지 참여했다. 이 뿐 아니다. 라디오 방송까지 섭렵했다. MBC ‘김기덕의 골든디스크’ ‘김성주의 굿모닝 FM’의 작가로 일했다. 특히 박 작가는 ‘김기덕의 골든디스크’에서 10여 년 동안 단막드라마 형태의 ‘음악에세이: 사랑이 있는 풍경’을 집필하며 드라마 작가로의 역량을 쌓았다. 2007년 KBS 예능국의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작가로 일하면서 드라마와 연을 맺었다. 이후 SBS ‘칼잡이 오수정’(2007)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미니시리즈 작가로 변신에 성공했다.
김남주를 내세운 MBC ‘내조의 여왕’(2009)이 30.6%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스타 작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남편을 위해 뒷바라지 하는 아내의 애절한 상황을 코믹하고 진솔하게 꾸며 인기를 얻었다. 막장코드 없이 고부간의 갈등을 명쾌하게 풀어낸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45%가 넘는 시청률로 ‘국민 드라마’에 등극했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박 작가는 현실적인 문제를 가볍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구성력이 뛰어난 작가”라며 “발단에서부터 결말을 이르는 구성 형식을 보여주는 김수현 작가나 노희경 작가와 달리 매 회마다 에피소드 중심의 삽화식 구성을 보여주는 강점을 지녔다”고 분석했다.
예능 교양 라디오 드라마를 아우르는 박 작가의 전방위적 경험은 최근작 ‘프로듀사’에서 유난히 빛을 발했다. ‘내조의 여왕’을 연출했던 김민식 PD는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들의 사연들로 에피소드를 수집하고, 예능적인 감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낸 작업이 향후 드라마를 완성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박 작가 다채로운 방송 경험을 자신의 강점으로 꼽는다. 그는 ‘올 댓 K-드라마’ 세션에서 “예능 출신 작가라고 하지만 사실은 라디오 작가부터 시작해 습작을 많이 했다”며 “라디오 작가 생활이 (드라마에)크게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박준호 인턴기자(동국대 불교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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