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제약사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의 신성숙 준법관리부 실장은 지난달 12세 아들을 혼자 프랑스에 보냈다. 현지 가정에서 열흘 동안 유럽의 일상을 경험하며 아들은 색다른 문화와 교감하는 방식을 스스로 터득해 돌아왔다.
110개국에 진출해 있는 사노피-아벤티스는 전 세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방학 때 ‘홀리데이 익스체인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서로 다른 나라의 직원끼리 일정 기간 동안 아이를 바꿔 돌봐주는 것이다. 신 실장의 아들이 머물렀던 프랑스 가정의 아이는 이달 말 한국에 올 예정이다. 신 실장은 “남들은 방학 때 사설 업체에 수백만원씩 줘가며 아이를 외국에 보내지만 이 프로그램 덕에 항공료 절반 정도만 투자해 아이에게 값진 경험을 시킬 수 있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나머지 교통비는 회사가 부담하고, 숙박은 상대국 직원의 가정에서 해결하니 안심도 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제약사들 사이에 최근 이처럼 워킹맘들 마음에 쏙 드는 참신한 복지제도나 봉사활동이 확산돼 호응을 얻고 있다. 형식적인 복지나 봉사에서 벗어나 가정과 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시도다. 배경은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사장은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성과를 높이는 데도 꼭 필요한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릴리에는 2년 전부터 재택근무 중인 ‘아빠’가 있다. 재택근무 제도를 운영하는 외국기업이 요즘 들어 꽤 생겼지만 남성 직원이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1주일에 1~3일만 사무실에 나오고 나머지 업무를 집에서 하는 김신걸 의약학정보지원팀 이사는 “아이들 등하교나 숙제도 도와줄 수 있어 워킹맘인 아내에게 큰 도움이 된다”며 “재택근무는 불필요한 대화 등에 쓰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업무 효율도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육아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많은 회사가 탄력근무제나 조기퇴근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출근을 늦추면 그만큼 퇴근이 늦어진다거나 일찍 퇴근한 다음날엔 야근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쓸 순 있지만, 복귀 후 어떻게 될 지 걱정을 떠안게 된다. 일과 가정의 양립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재택근무지만 사무실 ‘출석’이 익숙한 대부분의 회사에선 쉽게 엄두를 못 내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남성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다. 김 이사는 “남성들도 가정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로슈는 자녀가 있는 임직원이 1박 이상 출장 갈 때 육아비 명목으로 하루 3만원을 지원한다. 부모 대신 아이를 챙기는데 필요한 비용을 회사가 미리 지급해주는 것이다. 최근 육아비 지원을 받고 해외출장을 다녀온 김서현 한국로슈 부장은 “출장 일정이 잡히면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게 육아인데 육아비 지원으로 경제적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지지를 받고 있다는 든든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사회공헌 활동도 지난 5월 시작했다. 자신의 육아와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재능기부를 한다는 점에서 사내 워킹맘들에게 특히 호응도가 높다. 초기부터 초등학생들의 교사로 참여하고 있는 김진희 항암제사업부 부장은 “또래 아이를 둔 엄마라 같은 입장에서 고민하며 가르치게 되고 제약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들은 기업 내 여성 임원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9월 기준 한국릴리는 전체 임원 8명 중 6명(75%)이 여성이다. 한국 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이 2%에도 못 미치는 점에 비하면 큰 차이다. 한국릴리는 관리자급 직원 중 여성 비율도 38%로 국내 기업 평균(17%)을 크게 웃돈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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