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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눈 안쪽의 세계

입력
2015.08.1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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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피로가 심해져 허브눈지압베개라는 걸 장만했다. 길쭉한 헝겊주머니 안에 결명자, 라벤더, 페퍼민트 잎 등이 담겨있다. 독서 후나 잠자기 전 눈 위에 올려놓으면 부풀어 오른 안압이 내려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시야가 가려지는 만큼 사위가 어두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어둠이 약간 독특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음에도 망막 뒤편에 평소 잘 떠오르지 않는 글자나 그림 같은 게 아른거린다. 그게 혼란스럽다기보다 신비롭고 서늘하다. 일종의 환각이랄 수도 있을 텐데, 음악을 틀어놓으면 느낌의 진폭이 더 커진다. 선율과 리듬이 얹히면서 뇌리에 맺히는 상도 분명하고 또렷해지는 것이다. 때론 호흡의 굴곡이 시각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 굴곡을 관찰하며 천천히 숨을 조절하면 이내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잠이 들 때가 있다. 수면안대의 답답함과는 많이 다르다. 이런저런 향 때문일까. 다른 사람이 사용해도 이런 기분일까.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돈 몇 푼에 얻는 효과치고는 꽤 쏠쏠하다. 원고를 쓰고 또 베개를 눈 위에 얹어본다. 눈을 가려야 보이는 것들은 아름답기도 기괴하기도 하다. 사소한 물건 하나가 유도한 마음 안쪽의 숨은 그림이라 여긴다. 베개의 무게는 210그램. 그 무게만큼의 다른 세계를 몸 안에서 끄집어내는 일. 시도해 볼만하다. 그렇게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될 수도 있으니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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