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하늘 길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땅 길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북 정상회담을 이루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륙으로 향하는 철길로 휴전선을 넘어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우리 민족에게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는 원대한 꿈이다. 현 정권에게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이미 2013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발표하면서 부산-북한-러시아-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철도망 등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정부가 유별나게 공들이는 ‘나진-하산 프로젝트’ 또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을 위한 한 축이다.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 극동지역 하산과 북한의 나진항을 잇는 철로 개보수와 나진항 현대화를 통해 물자를 수송하는 복합물류 프로젝트다. 한반도와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고리에 해당된다.
남북을 연결하는 고리는 서울에서 원산까지의 경원선 철도다. 최근 백마고지와 월정리 구간의 경원선 복원공사가 시작됐다. 1,508억원의 남북협력기금이 투입된다. 이 공사가 완료된 후 군사분계선을 직접 관통하는 (남)월정리~(북)평강 구간 약 17㎞만 복원된다면 경원선 전구간도 운행 가능하게 된다. 정부는 경원선 복원에 의외로 적극적이다. 남북 철도연결에 대한 정권의 의지 표현이라고 본다.
얼마 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는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대장정을 마쳤다. 200여명의 원정대를 태운 열차가 부산역을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유라시아 대륙을 달렸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의 시범사업인 셈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관문이 남아있다. 남북 간의 대합의다.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는 남북철도가 휴전선을 가로질러 연결되어야만 완성될 수 있다. 그래야만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다. 동북아 경제협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사실상 남북 정상회담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풀기 어려운 숙제다.
시간도 문제다. 곧 현 정권의 임기도 반환점을 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당국간 대화,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재개 등 남북관계 정상화에 매진해야 한다. 순탄할 리 없겠으나 그런 노력의 끝에 정상회담의 문도, 유라시아 대륙을 향한 철길도 열릴 수 있다.
남북 화해협력, 경제협력은 대개 진보진영의 키워드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과거 민주당 정부 시절 경험했듯이 대북정책은 국민 대다수의 지지가 없으면 온전히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늘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때문에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는 현 정권이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한다면 훨씬 넓은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성공에 다가갈 수 있다.
광복 70돌을 앞두고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안보에는 여야, 좌우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남북관계 개선도 튼튼한 안보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최선의 안보는 대결을 위한 군사적 조치의 강화가 아니라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오늘, 대통령 전용열차가 평화를 향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을 그려본다.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ㆍ전 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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