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상대자의 직업에 따라 기대하는 요소가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개그맨과 결혼하면 평생 나를 웃겨줄 것이다’랄지 ‘선생님과 결혼하면 아이들 사교육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라는 류의 기대 말이다. 요리사도 이런 기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결혼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집에서도 요리를 하는가?’인 걸 보면 말이다.
실제로 집에서 절대로 요리를 하지 않는 요리사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십분 이해가 간다. 일주일에 6일 이상을 꼬박 주방에서 요리하다 보면 집에서는 손도 까딱하고 싶지 않을 법하다. 요즘처럼 더운 날씨엔 불 앞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숨이 막힐 때가 있다.
하지만 난 다르다. 결혼 전에도 휴일에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손수 요리를 했고, 결혼 후엔 가끔 아침을 차려 아내의 침대 위로 가져다 준다. 뭇 요리사들과 달리 내가 집에서도 요리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어린 요리사 시절 모시고 일하던 셰프가 가르쳐주신 게 있다. 자신은 40년을 일하는 동안 단 한번도 아내에게 이혼하자거나 가정을 소홀히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비결은 매일 아침 달걀 몇 개로 아주 쉬운 스크램블이라도 만들어 식사를 차려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리사가 요리 말고 알아둬야 할 정말 중요한 팁이라고 귀띔했다. 당시엔 그게 뭐 대수려니 했지만, 지금은 격하게 공감한다.
요리사라는 직업은 본의 아니게 가족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마련이다. 남들이 노는 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레스토랑을 찾으면, 요리사는 주방에서 열심히 굽고 볶고 삶고 튀긴다. 많은 사람들이 쉬는 날이 더 바쁜 게 요리사의 숙명이다. 크리스마스, 밸런타인 데이,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첫 날 등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이 요리사에겐 가장 바쁘게 일해야 할 날이다.
미국에서 실시한 어떤 조사에 따르면 요리사는 이혼율이 높은 직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상대적으로 박봉인데다가 쉬는 날이 일정치 않고, 근로기준법에 상관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야 성공할 수 있는 직업임을 알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족이 느낄 상실감과 공허함을 달래주기 위해선 평소에 잘 해야 한다. 그게 어릴 적 모셨던 셰프의 조언이기도 하다.
나는 특별한 날 함께한 추억 대신 내가 만들어 준 요리로 추억을 쌓으려 한다. 요즘처럼 더운 날엔 양가 부모님들의 몸보신을 위해 염소고기로 탕을 해 드린다. 친한 친구들이나 형제들은 가끔 집으로 모셔서 음식을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 딸 아이가 커서 어떤 음식이든 잘 먹는 나이가 되면 토요일 아침은 꼭 내가 직접 해주리라 다짐했다. 가장 소중한 아내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라도 편하게 침대에서 먹을 수 있는 아침을 차려준다.
누구에게나 지키고 싶은 게 있을 테고, 그 방법도 다양할 것이다.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건 가정이고, 난 요리를 통해 가정을 지키며 살고 있다. 가장 오랫동안 공들여 배우고, 가장 잘 하는 요리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며 살고 있으니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식당에선 단가 때문에 엄두도 못 내는 재료들 - 이를테면 일본산 고베 소고기, 프랑스산 거위간과 트러플(세계 3대 식재료 중 하나로 우리말로는 송로버섯에 해당한다. 인공 재배가 불가능하며 땅 속에서 자라 채취도 어려워, 유럽에선 ‘땅 속의 다이아몬드’라 부르기도 한다.),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 등 - 을 맘껏 써가며 가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가게의 주방 뿐만 아니라 집 주방에서도 앞치마를 두를 이유는 충분하다.
요리사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건 강력하게 추천할 만하다. 요리만큼 가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꼭 화려하거나 거창할 필요는 없다. 달걀로 스크렘블을 만들고 식빵을 구워 아침을 만들어도 좋고, 두부을 썰어 넣어 칼칼하게 끓인 된장찌개는 저녁에 제 격이다. 먹방이 대세인 요즘엔 쉽게 따라 할만한 레시피도 차고 넘치니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요리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