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재해대책비 과다 논란
기재부 "철저한 재난대비 위한 것"
농림축산식품부 일각에선 재해대책비 예산을 ‘헛배 예산’이라고 부릅니다. 재해대책비는 자연재해로 농작물이나 가축, 농업시설물 등에서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복구비용으로 쓰이는 예산인데요. 예산이 넉넉해도 다 쓰지 못하고 반납하는 일이 반복돼 헛배만 부르다는 겁니다. 실제로 2013년엔 1,273억원(예산의 58%), 2014년에는 1,932억원(89%)이 집행되지 못하고 불용(不用)처리 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해마다 농식품부가 요구한 예산보다 기획재정부가 더 많은 금액을 책정한다는 겁니다. 지난해 농식품부는 올해 재해대책비 예산으로 1,976억원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했는데요. 기재부는 200억원이나 더 많은 2,176억원을 정부 예산안으로 확정했습니다. 2014년도 예산안 편성 때도 기재부는 농식품부 요구(2,176억원)보다 무려 724억원을 더 얹은 2,900억원을 정부 예산안으로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각 정부부처가 예산을 요구하면 가차없이 메스를 들이대는 ‘짠돌이’ 기재부가 왜 예산을 더 얹어주는 것일까요? 그것도 2년 연속 대규모 불용이 발생한 예산인데 말이죠.
헛배예산의 비밀을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렇게 분석합니다. 농림축산식품 분야는 국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의 예산 민원이 특히 많은 분야인데요.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 예산 요구가 빗발치는 탓에 정부안보다 크게 늘어나기 일쑤죠. 문제는 의원들의 예산 증액 요구를 다 받아주다 보면 기재부가 설정한 농림축산식품 분야 예산 총액을 초과할 수 있다는 건데요. 때문에 기재부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예산 증ㆍ감액이 상대적으로 쉬운 예비비 성격의 재해대책비 등을 ‘완충제’로 삼아 필요 이상으로 부풀린 다음, 국회 심의과정에선 여기서 줄인 예산으로 의원들이 요구하는 예산을 늘려줌으로써 예산 총액을 넘지 않게 관리한다는 겁니다. 실제 올해 재해대책비 정부 예산안(2,176억원)은 국회에서 1,092억원으로 감액됐는데요. 그 차액은 밭농업직불제(+801억원) 농지규모화(+535억원) 등의 예산 증액에 돌아갔습니다. 예정처 관계자는 헛배예산에 대해 “매년 반복되면 다른 사업예산이 필요 이상으로 편성되는 낭비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을 합니다.
기재부는 헛배예산의 존재를 강력히 부정하는데요.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부처(농식품부)는 재량이 큰 사업예산을 늘리고, 재해대책비 같이 재량이 적은 예산은 가급적 줄이려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2012년 태풍 볼라벤 피해 같은 대규모 재난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부처 요구보다 예산을 늘리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반면 예정처는 만에 하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할 때는 다른 사업 예산을 가져다 쓰거나 예비비에서 충당할 수 있어 굳이 재해대책비를 과다 편성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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